의성 사촌의 인물_ 안동김씨세상(충렬공후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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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4-08-01 22:45 조회1,486회 댓글0건본문
의성 사촌의 인물
김광수, 유성룡 등 많은 선비 유현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조선조 후기 퇴계학의 정맥이라 일컫는 김종덕은 영남의 학통을 이었고, 그 문하에 많은 유생들이 이 원근에서 모여 수학했다.
김광수는(金光粹:1468-1563) 고려 중흥의 공신인 김방경이 9대조이고, 사촌으로 입향한 김자첨이 증조부가 되며, 서애 류성룡이 외손자이다. 일찌기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서 수학하다 연산군 때 벼슬에 뜻을 버리고 귀향하여 은둔 강학을 하며 청빈하게 살았다. 학문과 덕이 높아 당시 선비들이 송은거사(松隱居士)라 추앙하였다.
김사원은(金士元: 1539-1601) 천성이 후덕하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기민을 구휼함에 있어 전곡을 아끼지 않아 사람들이 김씨 의창(義倉)이라 일컬었다. 부호군의 벼슬을 지냈으며 퇴계의 고제로서 도산구곡(陶山九曲) 중의 제2곡으로 알려진 월란정사(月灡精舍)는 그가 강학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김사정(金士貞: 1552-1620)은 가훈에 따라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후진 양숙에 힘썼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와 함께 왜적에게 항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김종덕은 퇴계의 학통을 계승한 영남학파 학자로 영남의 사종(師宗)으로 추앙 받았다. 일찌기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덕망과 학행으로 의금부도사(義禁莩事)를 재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유자정(孺子亭)을 짓고 후학에 힘썼다.
유태춘(柳泰春:1729-1814)은 향시에 나가 거듭 합격했으나 출사와 명리를 멀리하고 병촌서재(屛村書齋)를 지어 청빈낙도 침작사색하면서 문생을 길렀다. 겸암일고(謙庵逸稿)와 남분지(南賁趾) 문집을 감수 교정했고, 저서로 문집 3권과 사례고증(四禮攷證) 및 농상문답(農桑問答)이 있다.
유도수(柳道洙:1820-1889)는 고종 10년, 군주의 불효를 간쟁하는 대의명분으로 만인 소수(疏首)가 되어 대원군 봉환소(奉還疏)를 올리다가 1875년 함경도 길주에 10여년간 유배되었다. 저서에 북행일록(北行日錄) 등이 있고, 문집 8권이 전한다.
의성 사촌리 전통마을
사촌리는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 위치한다. 점곡면으로 청송~의성간의 지방도가 지나고, 점곡~단촌 사이의 군도가 포장되어 있고, 점곡면 사촌리는 단촌면과 옥산면, 의성읍과 접하며, 점곡면 내에서는 서변동, 중리동, 월천동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의성읍에서 점곡까지는 14.50㎞이다.
사촌전통마을은 안동김씨와 풍산류씨의 집성촌으로 송은 김광수(松隱 金光粹:1468-1563),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 천사 김종덕(川沙 金宗德) 등 많은 유현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조선조 문현달사(文賢達士)와 과한(科翰)이 이어진 마을로 대과에 13명, 소과에 28명이 합격하는 등 선비학자들이 배출된 마을이다. 약 30여 동의 전통 고가들이 존재하고, 그 중에서 만취당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민가로 알려져 있다. 600년 이상 된 방품림으로 조성된 마을입구의 숲이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사촌가로숲’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만취당(晩翠堂)이 지방유형문화재 제169호로 지정되어 있고, 사촌가로숲이 경북 보호림 1등급 9-75호로 지정되어 있다. 만취당은 조선조 특유의 11간 대청 건물이다. 400년전 이곳에서 약 2㎞ 밖에 있었던 신라 때의 사찰(寺刹)문루를 옮겨 세웠다고 한다. 의성군지에 의하면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 無量壽殿)과 더불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가운데 하나이다.
사촌의 역사를 보면 신라시대 나정승(羅政丞)이 이 마을에 살았다는 전설과 자하산(紫霞山)에 나정승 묘가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마을의 생성은 1,000년이 넘었을 것으로 얘기된다. 지명은 충열공 김방경(忠烈公 金方慶)의 후예 감목공 김자첨(監牧公 金子瞻)이 안동 회곡(檜谷)에서 이주하여 1392년 중국의 사진리(沙眞里)를 본 따서 사촌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 마을과 관계되는 풍수설로는 자하산과 기령산(奇靈山)이 배산(背山)이고 금성산(金城山)이 안산(安山)이다. 사방의 산이 마을과과 물이 이곳으로 쏠렸는데 산수가 밝고 맑아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해진다. 경관방풍림이 있고 자하산을 등지고 대촌의 고가들이 늘어서 있다.
최초작성자 : 야후지식 의 askmongomery 님
김광수, 유성룡 등 많은 선비 유현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조선조 후기 퇴계학의 정맥이라 일컫는 김종덕은 영남의 학통을 이었고, 그 문하에 많은 유생들이 이 원근에서 모여 수학했다.
김광수는(金光粹:1468-1563) 고려 중흥의 공신인 김방경이 9대조이고, 사촌으로 입향한 김자첨이 증조부가 되며, 서애 류성룡이 외손자이다. 일찌기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서 수학하다 연산군 때 벼슬에 뜻을 버리고 귀향하여 은둔 강학을 하며 청빈하게 살았다. 학문과 덕이 높아 당시 선비들이 송은거사(松隱居士)라 추앙하였다.
김사원은(金士元: 1539-1601) 천성이 후덕하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기민을 구휼함에 있어 전곡을 아끼지 않아 사람들이 김씨 의창(義倉)이라 일컬었다. 부호군의 벼슬을 지냈으며 퇴계의 고제로서 도산구곡(陶山九曲) 중의 제2곡으로 알려진 월란정사(月灡精舍)는 그가 강학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김사정(金士貞: 1552-1620)은 가훈에 따라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후진 양숙에 힘썼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와 함께 왜적에게 항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김종덕은 퇴계의 학통을 계승한 영남학파 학자로 영남의 사종(師宗)으로 추앙 받았다. 일찌기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덕망과 학행으로 의금부도사(義禁莩事)를 재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유자정(孺子亭)을 짓고 후학에 힘썼다.
유태춘(柳泰春:1729-1814)은 향시에 나가 거듭 합격했으나 출사와 명리를 멀리하고 병촌서재(屛村書齋)를 지어 청빈낙도 침작사색하면서 문생을 길렀다. 겸암일고(謙庵逸稿)와 남분지(南賁趾) 문집을 감수 교정했고, 저서로 문집 3권과 사례고증(四禮攷證) 및 농상문답(農桑問答)이 있다.
유도수(柳道洙:1820-1889)는 고종 10년, 군주의 불효를 간쟁하는 대의명분으로 만인 소수(疏首)가 되어 대원군 봉환소(奉還疏)를 올리다가 1875년 함경도 길주에 10여년간 유배되었다. 저서에 북행일록(北行日錄) 등이 있고, 문집 8권이 전한다.
의성 사촌리 전통마을
사촌리는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 위치한다. 점곡면으로 청송~의성간의 지방도가 지나고, 점곡~단촌 사이의 군도가 포장되어 있고, 점곡면 사촌리는 단촌면과 옥산면, 의성읍과 접하며, 점곡면 내에서는 서변동, 중리동, 월천동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의성읍에서 점곡까지는 14.50㎞이다.
사촌전통마을은 안동김씨와 풍산류씨의 집성촌으로 송은 김광수(松隱 金光粹:1468-1563),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 천사 김종덕(川沙 金宗德) 등 많은 유현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조선조 문현달사(文賢達士)와 과한(科翰)이 이어진 마을로 대과에 13명, 소과에 28명이 합격하는 등 선비학자들이 배출된 마을이다. 약 30여 동의 전통 고가들이 존재하고, 그 중에서 만취당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민가로 알려져 있다. 600년 이상 된 방품림으로 조성된 마을입구의 숲이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사촌가로숲’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만취당(晩翠堂)이 지방유형문화재 제169호로 지정되어 있고, 사촌가로숲이 경북 보호림 1등급 9-75호로 지정되어 있다. 만취당은 조선조 특유의 11간 대청 건물이다. 400년전 이곳에서 약 2㎞ 밖에 있었던 신라 때의 사찰(寺刹)문루를 옮겨 세웠다고 한다. 의성군지에 의하면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 無量壽殿)과 더불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가운데 하나이다.
사촌의 역사를 보면 신라시대 나정승(羅政丞)이 이 마을에 살았다는 전설과 자하산(紫霞山)에 나정승 묘가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마을의 생성은 1,000년이 넘었을 것으로 얘기된다. 지명은 충열공 김방경(忠烈公 金方慶)의 후예 감목공 김자첨(監牧公 金子瞻)이 안동 회곡(檜谷)에서 이주하여 1392년 중국의 사진리(沙眞里)를 본 따서 사촌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 마을과 관계되는 풍수설로는 자하산과 기령산(奇靈山)이 배산(背山)이고 금성산(金城山)이 안산(安山)이다. 사방의 산이 마을과과 물이 이곳으로 쏠렸는데 산수가 밝고 맑아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해진다. 경관방풍림이 있고 자하산을 등지고 대촌의 고가들이 늘어서 있다.
최초작성자 : 야후지식 의 askmongomery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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