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2004년 제3회 안사연 여름캠프 보고(1)

페이지 정보

김윤식, 김발용 작성일04-08-05 20:39 조회1,998회 댓글0건

본문

2004년 제3회 안사연 여름캠프 보고(1)

대종회장님을 비롯한 문중 어르신들과 전국에 계신 일가분들의 크나큰 성원과
염려 덕분에 2004년도 제3회 여름캠프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 말씀 올립니다.
이번 행사는 제1ㆍ2회 여름캠프와 달리 충북지역에서 처음 실시되어 전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참여자 역시 해마다 증가세를 보여 여름캠프가
우리 문중의 주요 행사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특히 대종회장님과 사무총장께서 여름캠프 격려차 첫날 행사에 참석하셔서 자리
를 더욱 빛내 주셨습니다. 거듭 감사 말씀 드립니다.
이번 행사를 위해 안사연에서는 지난 7월 4일 행사지역에 대한 사전점검 내용과
우리 홈페이지를 통해 주요 답사지역을 소개해 드린 바 있습니다.
이번 답사지역은 제학공파와 안렴사공파 선조님들의 주요 유적지를 망라하고 있고,
첫날 일정이 빠듯하여 현지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위주로 4회 정도로 나누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일시 : 2004년 8월 1일~8월 3일
■장소 : 충북 오창, 증평, 괴산 일대
■답사 지역
◆8월 1일(일)
  중부고속도로 증평IC 집결 → 오창 모정리 안렴사공 묘역 → 복현리 체경묘원 →
양지리 송천서원 → 남하리 죽헌공문중 경모재 → 율리 남봉공 묘역 → 청안읍 청안
사마소 → 보광산 감사공 묘역 → 증평 홍명희 생가 → 비안공문중 세덕사 → 양덕공
묘소 → 사직공 묘역 → 세덕사 → 증평 동진천 → 사호정 및 괴산군청 → 세덕사

◆8월 2일(월)
  세덕사 → 소수면 수리 부자독립운동공적비 → 수리 참판공 후손 가족묘역 → 능촌
리 五甲문중 유적지 → 충민사 → 구암공 묘역 → 쌍곡계곡

◆8월 3일(화)
  쌍곡계곡 → 김사달 박사 묵적비 → 김시약 장군 현충비

■참석자 : 무순, 존칭 생략, 괄호 안은 가족
◆대종회 및 현지 종친
☆대종회 - 대종회장(태인) 및 사무총장(관묵)
☆현지 종친 - 제학공파, 안렴사공파 일가분 합(合) 100여 명

◆여름캠프 참석자 : 총 22가족 42명
☆영환(문) - 3명(2남 홍묵, 장묵)
☆상석(제) - 3명(1녀 1남 슬빈, 선응)
☆옥회(제) - 1명
☆성회(안) - 1명(전 대종회 부회장)
☆영회(제) - 1명
☆윤만(문) - 3명(부인, 1남 태경)
☆은회(익) - 1명
☆주회(안) - 4명(부인, 1남 1녀 우식, 우정)
☆태우(군) - 2명(부인)
☆태서(제) - 1명
☆희준(도) - 2명(1남 수형)
☆항용(제) - 2명(부인)
☆정중(도) - 3명(부인, 1남 용균)
☆대식(안) - 1명(괴산문화원장)
☆용두(제) - 1명
☆용제(제) - 1명
☆용주(안) - 2명(부인)
☆용준(안) - 2명(1남 필교)
☆용환(안) - 2명(1녀 은영)
☆운기(제) - 1명
☆발용(군) - 3명(부인, 1남 형주)
☆윤식(문) - 2명(부인)

■가족 소개
☆영환 - 대종회 감사 및 문온공파 총무이사로 대종회 및 파종회 발전에 오랫동안
공헌하셨습니다. 해마다 8명의 대가족이 참여하셔서 다복한 가족 모습을 보여 주
셨습니다. 올해는 증조모님 기일과 겹쳤음에도 첫날 행사에 아드님들과 참석하셨
습니다.
☆옥회 - 호(號)가 성암(聲庵)이시며, 서예와 한학에 정통하셨습니다. 교육계에서
정년 퇴임하신 뒤 후학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우리 홈페이지에 <마음을 다
스리는 글>을 연재 중이십니다.
☆성회 - 전 대종회 부회장으로 대종회 및 안렴사공파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계십
니다. ‘살아 있는 대동야승’으로 불릴 정도로 문중사와 국학에 정통하시며, 안사연
발전에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윤만 - 안사연을 비롯한 문중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계십니다. 그 동안 여름캠프
에 아드님과 함께 참석해 오다 이번에는 부인을 대동하셨습니다.
☆은회 - 안사연 활동에 큰 역할을 맡고 계시며, 그 동안 사업상 여름캠프에 참석치
못하다가 어렵게 시간을 내서 참가하셨습니다.
☆주회 - 올해 서울로 파견근무를 나와 낯선 서울 생활 중이십니다. 현재 중국어에
열성이시라 훗날 중국의 선조님 유적답사에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태우 - 12대 종손으로 안사연과 군사공파 등 문중 일에 적극적으로
활동 중이십니다.
☆태서 - 21세기전략연구소 소장으로 정치에 큰 뜻을 품고 계십니다.
☆정중 - 지난 해에는 큰아드님 용경 군에 이어 올해는 부인과 작은 아드님 용균 군
을 대동하셨습니다. 안사연 활동은 물론 대구지역에서 막중한 역할을 맡고 계십니
다.
☆대식 - 괴산문화원장으로 지역문화 진흥과 우리 문중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계
십니다. 지난 7월 초 여름캠프 사전점검 당시 관내 안내를 맡아 주셨습니다.
☆용두, 용제 - 우리 문중의 주요 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하시고 계신 분들로 전국의
일가분들께 널리 알려지신 분들이십니다. 두 분 모두 고령이신데도 여름캠프에 참석
하셔서 이번 행사에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용주, 용준, 용환 - 화산군(휘 주) 후손들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최근 화산군 영정
을 모신 데 이어 비석을 개수하셨습니다. 화산군 현양사업으로 <우암유집> 국역을
성공리에 추진 중이십니다. 이번 여름캠프에 3형제분이 모두 참석하시고, 행사 기간
내내 묵묵히 행동으로 솔선수범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셔서 참가 가족들의 귀감이 되
셨습니다.
☆운기 - 퇴계 학맥의 정통을 이은 손꼽히는 한학자이십니다. 지난 대종회 창홀연수
에서 그 일면을 보여 주신 바 있습니다. 이번 행사에서도 구수한 이야기와 함께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상석, 영회, 발용, 희준, 항용, 윤식 - 지난 해와 큰 변화 없습니다.

■답사 내용

▣8월 1일(일)

◆새벽~08:30 증평IC
7월 31일 사전 준비를 마친 참가자들은 서울, 대구 등지에서 1차 집결지인 중부고속
도로 증평IC를 향해 새벽녘에 출발하였습니다. 전날 저녁, 태풍이 일본열도를 거쳐
우리 나라 해상으로 북서진 중이라 전국에 폭우가 쏟아질 것으로 예보한 터라 내내
신경이 쓰였습니다.
여느 해보다 참가자들이 많아 차량 행렬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돼 무엇보다도 이동
중 가족들의 안전이 가장 우려되었습니다. 다행히 선조님들의 보살핌 때문인지 어둠
이 벗겨지면서 동이 트자 하늘이 맑게 개어 걱정거리를 말끔히 씻어 주었습니다.
이번 행사는 윤만 종친의 총괄 기획과 항용 종친께서 수차에 걸쳐 행사지역을 샅샅
이 답사한 덕분에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 말씀 드립니
다.
08:00분 약속시간에 1차 집결지에는 대종회 사무총장(관묵)과 대종회 감사(영환)를
비롯한 대부분의 참가 가족들이 도착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피서철이 절정인지라
영동고속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였습니다. 그 여파로 경부고속도로까지 막
혀 08:30분경이 되어서야 1차 집결지에 모일 수 있었습니다.
인원점검을 마친 다음 혹시나 조금 늦게 합류하실 분들을 고려해 조금 더 기다렸다
가 08:45분 안렴사공(휘 사렴) 할아버지 묘역으로 향했습니다. 증평IC에서 안렴사공
묘역까지는 우리 일행이 차량이 많아 점검시간보다 조금 더 정도 걸렸습니다. 이곳
에서 묘역까지는 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찾아가는 길은 지난 7월 4
일 사전점검 보고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sum_0001.jpg
sum_0002.jpg
sum_0003.jpg
sum_0004.jpg
sum_0005.jpg
sum_0006.jpg
sum_0007.jpg
sum_0008.jpg

◆09:00 증평IC - 09:40 안렴사공 묘역
08:52, 안렴사공(휘 사렴) 묘역에 도착하니 안렴사공파 종친 50여 분이 기다리고 계
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묘역 입구에는 안렴사공 신도비각과 재실인 영모재, 재직사
가 있습니다. 영모재는 ㄷ자 형태의 한옥으로 대문에 <안동김씨 안렴사공파대종회
사무국> 현판이 걸려 있으며, 담벽에는 오석에 음각한 안내판이 있습니다.
신도비각에서 묘역인 알령산(오근도산)을 바라볼 때, 오른쪽이 안렴사공 묘소이며,
왼쪽이 안렴사공의 할아버님이신 정간공(휘 영후), 아버님이신 영삼사공(휘 천) 단소
입니다. 이 두분의 묘소는 개성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1962년 정간공 후손
인 안렴사공파, 익원공파, 서운관정공파 3파가 합력하여 단소를 조성하였습니다.
sum_0009.jpg
sum_0010.jpg
sum_0011.jpg
sum_0012.jpg
sum_0013.jpg
sum_0014.jpg
sum_0015.jpg

△충렬공 → 3子 문영공(휘 순) → 4子 정간공(휘 영후) → 1子 영삼사공(휘 천) → 1子
판사공(휘 사겸), 2子 안렴사공(휘 사렴), 3子 충강공(휘 사안), 4子 익원공(휘 사형)
△충렬공 → 3子 문영공(휘 순) → 4子 정간공(휘 영후) → 2子 감찰사장령공(휘 장) →
子 서운관정공(휘 수)

나지막한 산기슭인데도 내리쬐는 햇볕이 따가워 모두들 땀벅벅입니다. 묘역으로 올
라가자 대종회장님을 비롯한 안렴사공파 회장님(재택), 제학공파 회장님(영묵) 및 50
여 명의 종친들께서 반가이 맞아 주십니다. 나이 어린 종친들이 연신 땀을 닦아내며
묘역으로 올라오자 어르신들께서 기특하다며 연신 등을 두드려 주십니다. 그 정겨운
광경에 가슴이 벅찹니다.
곧이어 대종회장님과 안렴사공파종회장님의 인사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대종회장
님께서는 이 삼복 더위를 무릅쓰고 조상님을 찾아뵙는 뜻깊은 행사에 만반의 준비를
해 주신 두 분 종회장님께 감사드리며, 자라나는 청소년ㆍ학생들이 부모를 따라 참
여해 준 것을 치하하셨습니다. 특히 “숭조목족(崇祖睦族)은 가정의 근본이자 우리
문중 발전의 원동력”임을 강조하시면서 “그 취지를 길이 이어갈 것”을 당부하셨습
니다.
재택 종회장님께서는 이번 여름캠프의 첫 답사지로 안렴사공 묘소를 찾아준 데 대해
감사드리며, 우리 문중의 번영을 기원하신 뒤 안렴사공 묘역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두 분의 인사 말씀에 이어 참석자들은 두 분 할아버님께 큰 절을 올린 뒤 안렴사공
묘소로 자리를 옮겨 성묘하였습니다.
sum_0017.jpg
sum_0016.jpg
sum_0018.jpg
sum_0019.jpg
sum_0020.jpg
sum_0021.jpg
sum_0022.jpg
sum_0023.jpg
sum_0024.jpg
sum_0025.jpg
sum_0026.jpg
sum_0027.jpg

▲정간공 묘소
헌관 : 태인(대종회장)
집례 : 용두
집사 : 항용
사준 : 용환

▲영삼사공 묘소 .
헌관 : 태인(대종회장)
집례 : 용두
집사 : 항용
사준 : 용환

안렴사공께서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여말 8청’ 중의 한 분으로서 고려조가 멸망하
자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키기 위해 거듭되는 조선 태조(이성계)의 부름에 응하지 않
고 이곳 모정리로 낙향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덤이나 묘표를 비롯해 자신의 유
택임을 알 수 있는 그 어느 것도 남기지 말 것이며, 고려조에 벼슬을 한 자손은 조선
조에서 벼슬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이처럼 묘소를 평총하여 안렴사공 이하 4대 할아버님의 묘소가 실전되었는데, 1678
년 증손 양성공(휘 취) 묘소 자리를 마련하다가 안렴사공의 묘지석을 발견하였답니
다. 이를 계기로 또다시 실전되지 않도록 작은 봉분과 묘갈을 세웠다가 광복 후에 다
시 봉토하였다고 합니다. 재택 종회장님 말씀으로는 “종이 한 장도 남기지 말라.”고
하신 까닭에 유물 한 점 남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안렴사공 묘소는 어른 걸음으로 둘레 30보이며, 상석을 비롯해 망주석, 문인석, 동자
석이 각각 1쌍씩 배치돼 있습니다. 평총을 하지 않았다면 안렴사공 유품은 물론 고
려조 석물도 남아 있었을 터인데 내내 아쉽기만 합니다.
묘소 뒤에는 도래솔이 둘러서 있으며, 묘소 바로 아래에는 ‘고려충신 안렴사 김공사
렴지묘’라 새긴 거대한 비석이 서 있습니다. 양성군종회장님(예묵)께서는 이 자리는
원래 다섯째 아드님(휘 약) 설단이었는데 안렴사공 묘지석 발견 후 체경묘원으로 옮
겨 모시고, 양성공(휘 취) 묘소 역시 약간 오른쪽으로 옮겨 안렴사공 묘하로 모신 뒤
이 비석을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sum_0028.jpg
sum_0029.jpg
sum_0034.jpg
sum_0033.jpg
sum_0030.jpg
sum_0031.jpg
sum_0032.jpg

▲안렴사공 묘소
헌관 : 태인(대종회장)
집례 : 용두
집사 : 항용
사준 : 용주

양성현감을 지내신 양성공(휘 취) 묘비에는 <통훈대부 행양성현감 안공김공취(吹)지
묘, 배 숙부인 이씨지묘>라 새겨져 있습니다. 이 할아버님 덕분에 실전되었던 안렴
사공 묘소를 발견하였으니 참으로 뜻깊은 곳입니다.
호석으로 둘러싼 양성공 묘소는 묘표와 문인석 1쌍은 이끼가 내려앉아 있으나, 망주
석은 근래에 세운 것입니다.
sum_0035.jpg
sum_0036.jpg
sum_0037.jpg
sum_0038.jpg

▲양성공 묘소
헌관 : 예묵(양성군종회장)
집례 : 용두
집사 : 항용
사준 : 용주

묘역 입구의 신도비각은 정면과 측면 각 1칸의 팔작지붕이며, 비신은 6자입니다. 이
외에 안렴사공 묘역에 대해서는 주회 종친께서 우리 홈에 올리신 답사자료로 대신합
니다.
sum_0041.jpg
sum_0042.jpg
sum_0043.jpg
sum_0044.jpg
sum_0040.jpg
sum_0039.jpg

◆09:40 안렴사공 묘역 - 09:50 체경묘원 着
안렴사공 종친들의 배웅을 뒤로 하고 묘역을 출발하자 답사 차량이 19대로 늘어났
습니다. 체경묘원은 오창 읍내로 들어가 4거리에서 우회전해야 하는데 이정표도 없
는 길을 처음 가 본 탓에 제대로 안내하지 못해 송구합니다.
체경묘원에는 안렴사공의 6남 1녀 중 아드님 3분(1子 휘 간, 3子 휘 위, 5子 휘 약)과
소윤공(휘 약)의 외아드님 지주사공(휘 우주)의 묘소가 있는 곳입니다.
오창 복현리 분토골의 체경묘원은 안렴사공의 손자이신 지주사공(휘 우주)의 묘소만
있던 곳이었는데, 안렴사공의 아드님 3분의 묘소가 본래 계셨던 자리가 공업단지로
조성되면서 지주사공 묘소 위쪽으로 옮겨 모시면서 명명한 것이라고 합니다. 체경묘
원(棣慶墓苑)은 묘역 조성 당시 재화 종친께서 작명하신 것으로 도타운 형제간의

우애를 뜻한다고 합니다.
묘역 위쪽에 체경묘원유연비(棣慶墓苑由緣碑)가 서 있고, 그 옆에 안렴사공 아드님
3분의 묘와 설단이 있습니다. 묘소를 바라보고 왼쪽이 안렴사공(휘 간), 가운데가 소
윤공(휘 약), 오른쪽이 정랑공(휘 위) 유택인데 소윤공만 실묘이며 두 분은 설단입니
다.
묘소로 올라가는 계단은 큼직한 장대석으로 조성돼 있는데, 이 돌들이 바로 원래 묘
역에서 호석으로 쓰던 것을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 장대석을 보니 본래 묘소가
얼마나 컸던가를 단번에 짐작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안렴사공께서는 6형제를 두셨으나, 둘째 아드님(휘 인간)께서는 승려로 출가하시고
다섯째 아드님(휘 약)과 여섯째 아드님(휘 식)만 후손을 두셨습니다.
sum_0045.jpg
sum_0046.jpg
sum_0047.jpg
sum_0048.jpg
sum_0049.jpg
sum_0050.jpg
sum_0051.jpg
sum_0052.jpg
sum_0053.jpg

▲체경묘원
헌관 : 영묵(제학공파종회장)
집례 : 용두
집사 : 용주
사준 : 윤만

◆10:20 체경묘원 - 10:27 송천서원 着
빠듯한 일정에 예정하지 않았던 체경묘원 참배가 추가되어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습
니다. 다시 오창 읍내 4거리로 나와 목령산의 송천서원으로 향합니다. 송천서원에
관한 내용은 답사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라며, 주요 내용만 말씀드립니다.
이곳은 안렴사공파의 제2 성지(聖地)에 해당하는 곳으로 목령산을 중심으로 사방이
모두 안렴사공 후손들의 유택과 집성촌입니다.
좁은 농로를 따라 송천서원에 도착하니 모현문(慕賢門)이 우리 일행을 맞이합니다.
송천서원은 실전되었던 안렴사공의 묘소를 찾고 30년이 지난 1708년 이 지역 유림
들이 세웠습니다.
주벽이신 안렴사공을 비롯해 모두 15분이 배향돼 있는데, 안렴사공 바로 왼쪽에 전
주인 최유경 공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분은 상락군(휘 묘)의 3째 사위로서 문온공(휘
구용)의 매부이자 안렴사공의 동생 관찰사공(휘 사안)의 손아래 동서이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배향되신 분들이 우리 문중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안렴사공의 4子
절제사공(휘 제)께서는 따님만 두 분 두셨는데, 전의인 이사혜 공과 이훈 공에게 출
가하셨습니다. 이사혜 공의 아버지가 바로 송천서원에 배향된 이정간 공이십니다.
이처럼 절제사공께서는 아드님이 없이 두 분 따님 모두 전의이씨 문중으로 출가하신
까닭에 당시 예속에 따라 절제사공은 전의이씨 문중에 습승되어 전의이씨 문중에서
500년간 외손봉사를 모시고 있으니 양 문중의 아름다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또한 경주인 이대건 공은 이시발 공의 아버지로 안렴사공파 휘 도 할아버지의 사위
이며, 역시 경주인 이인혁 공은 이시발 공의 손자입니다. 전주인 최석정 공은 최유경
공의 후손이며, 의령인 남구만 공은 안렴사공파 휘 상기 할아버지의 외현손으로서
안렴사공의 묘갈록과 신도비명을 찬하였습니다. 전의인 이효석 공은 안렴사공의 4
子 휘 제 할아버지의 사위 이사혜의 아들이니 안렴사공의 외손자입니다.
참석자들 모두 우리 문중과 각별한 경내의 송천사(松泉祠)로 들어가 큰절을 올립니
다. 일반적으로 위패는 왼쪽부터, 소묘법으로는 가운데에서부터 모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은 특이하게도 오른쪽에 주벽이신 안렴사공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상세히 알 수 없으나 1871년 고종 8년 대원군의 사원훼철령으로 철폐된
송천서원을 1976년 복원하면서 옛 법을 따라 현재처럼 모시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축을 읽거나 향사를 모실 때 등 모든 제례와 행사에서는 항상 안렴사공부터 시작한
다고 합니다.
sum_0055.jpg
sum_0054.jpg
sum_0056.jpg
sum_0057.jpg
sum_0058.jpg
sum_0059.jpg
sum_0060.jpg
sum_0061.jpg
sum_0062.jpg

◆10:40 송천서원 - 11:36 죽헌공종중 경모재 着
예정시간보다 1시간 가량 지체되어 우려했던 대로 일정이 더욱 빠듯해졌습니다. 삼
보산 죽헌공종중 경모재에서는 이미 일가분들께서 모두 모이셔서 우리 일행이 도착
하기만을 벌써부터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여기저기서 울리는 핸드폰 소리가 긴박감
을 더합니다.
길을 되짚어 증평IC 쪽으로 향합니다. 안렴사공파 최대 집성촌 가운데 한 곳인 400
년 세거지인 죽리 삼보산 중턱의 죽헌공종중 재실로 향하는 길입니다. 이 길을 그대
로 쭉 따라가면 제학공파 남봉공(휘 치) 할아버지 묘역이기도 합니다.
11:24분 증평초ㆍ중ㆍ공고를 지나 청안 방향(도로표지판)으로 달리다가 흥천교 앞
에서 우회전을 합니다. 우리 차량 행렬이 워낙 긴 탓에 결국 신호에 걸려 후미 차량
이 우회전하는 선두차량을 놓치고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서둘러 선두차량으로 연락을 취해 길가에 정차한 채 후미차량을 기다리느라 상당 시
간을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비록 예상하기도 했지만, 다음 행사에서는 더욱 철저하
게 대비해야 할 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 또한 사전점검 때와 다른 길을 선택한 탓에
후미차량에서 되돌아오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삼보산 죽헌공종중 경모재에 도착하니 어느새 11:36분입니다. 경모재 앞은 대식구
를 맞이하기 위해 트랙터로 밭을 깨끗하게 밀어 주차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
니다. 세세한 곳까지 배려해 주신 일가분들께 감사 말씀 올립니다.
삼보산 인근의 남하리, 죽리, 용강리 일원의 안렴사공파 종친들은 서령공(휘 자형)의
후손들의 세거지로서 1,600여 세대가 모여 사시던 곳입니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
화의 영향으로 현재는 700여 세대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이곳 역시 자세한 설명은 우리 홈페이지에 올라온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라며 주요
내용만 말씀드립니다.
안렴사공의 6子 좌랑공(휘 식)께서는 자여, 자형, 자여 3형제분을 두셨는데, 서령공
의 휘가 바로 자형이십니다. 서령공 역시 안렴사공의 유지를 받들어 과거 급제를 업
으로 삼지 말 것과 유택을 평총으로 하도록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이 때문에 서령공
의 묘소도 안타깝게도 실전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죽헌공은 바로 서령공의 아드님 규, 소, 욱 가운데 맏아드님이신 휘 규이십니다. 경
모재는 죽헌공 휘 규 할아버지의 재실로서 예전에 이곳 죽헌공종중에서 서당으로 쓰
던 건물이라 합니다. 현 경모당은 옛 자리에 2002년도에 다시 지은 건물입니다.
경모재 안으로 들어가니 시원한 냉커피를 준비해 두었다가 나누어 주십니다. 일가분
정성에 한여름 더위가 저만큼 물러갑니다.
죽헌공종중 회장님(재성)께서는 환영인사와 더불어 이곳에 우리 문중이 터를 잡게
된 내력을 일러 주십니다. 현재 삼보산 일대 5만여 평이 종중산이며, 서령공 후손들
의 성금과 군비 지원금 등으로 묘역 일대와 진입로 등을 포장했다고 합니다.
sum_0063.jpg

▲죽헌공종중 재실
헌관 : 태인(대종회장)
집례 : 용두
집사 : 항용

‘삼보’는 3가지 보물을 뜻하는데 금, 산골, 인삼이 바로 그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일대는 죽헌공종중 소유라 금을 채굴하지 않고 있답니다.
오랜 세월 세거한 지역답게 이 일대는 죽헌공종중과 관련된 유적이 무수히 산재해
있습니다. 죽리 수호석, 원평마을 천제사, 안동김씨사, 김환극 부부 효비각, 한사정
등을 비롯한 유형ㆍ무형의 유적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주회 종친께서
게시판에 올리신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일정 탓에 대종회장님을 비롯한 일가분들이 경모재 앞으로 모여 기념사진을 찍
습니다. 무려 100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라 장관이었습니다. 아쉽게도 다음 약속 때
문에 삼보산 일대의 할아버지 묘소를 성묘하지 못해 죄송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기념촬영을 마치고 대종회장님께서 서울로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큰 사업을 이끄시
느라 1분 1초도 쪼개 쓰시는 회장님께서 귀한 시간을 내주신 덕에 이번 행사가 더욱
빛을 발합니다.
일정상 좀더 여유가 있다면 산들이 중첩되며 그려내는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경모
재에서 일가분들과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겠건만....... 그러하지 못하는 일정이 안타
깝고 송구하기만 합니다.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한 채 이제 율리 남봉공 할아버지 묘역으로 향할 시간입니다.
서울로 올라가시는 대종회장님을 비롯한 문중 어르신들 무사히 상경하시기를 빕니
다.
sum_0064.jpg
sum_0065.jpg
sum_0066.jpg
sum_0067.jpg
sum_0068.jpg
sum_0069.jpg
sum_0070.jpg
sum_0071.jpg
sum_0072.jpg
sum_0073.jpg
sum_0074.jpg
sum_0075.jpg
sum_0076.jpg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드리고, 내일 율리 남봉공 묘역부터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김윤식,  사진 김발용>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