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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金方慶 69---만년 기록1 (1300년 이진 찬 김방경 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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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 작성일04-08-13 11:08 조회1,5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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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께서는 1283년 72세로 치사(나이가 들어 벼슬에서 물러남)하시고 1300년 89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장수하셨습니다. 72세부터 89세까지는 벼슬을 하지는 않으셨으나 국가원로로서 국정에 많은 자문을 하셨습니다. 충렬공의 만년 행적을 연재하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충렬공 묘지명 (1300, 이진 찬)

계미(癸未1283)년에 또다시 소장(疏章)을 올려 퇴임(退任)할 것을 간청(懇請)하니 왕은 부득이하여 삼한벽상 추충정난정원공신 광정대부 삼중대광 판도첨의사 상장군 판전리사사 세자사(三韓壁上推忠靖難定遠功臣匡靖大夫三中重大匡判都僉議事上將軍判典理司事世子師)를 더 봉(封)하고 이내 치사(致仕)하게 하였다.

그러나 왕께서 마음속으로 미안(未安)하게 생각하여 병신(丙申=1296)년 겨울에 또 관작(官爵)을 상락공(上洛公)으로 가봉(加封)하고 식읍(食邑)일천호를 봉하였으나 실봉(實封)은 삼백호(三百戶)였다.

공(公)께서 재직(在職)시에 항상(恒常) 밤에는 일찍 주무시고 새벽에는 일찍 일어나 앉아서 아침을 기다리시고 이내 수레에 오르시기를 전과 다름없이 한결같이 하였으며 나라의 안위(安危)에 대하여 항상(恒常) 염려(念慮)하셨다.

대덕4년(大德4년=1300년) 8월 16일에 병환(病患)으로 인하여 백목동(栢木洞) 영계리(영溪里)에서 돌아가시어 9월 초3일에 예안현(禮安縣) 서쪽 산록(山麓)에 유교(遺敎)에 따라 안장(安葬)하였다.

아! 슬프다. 난(難)을 구원(救援)하고 백성(百姓)을 구제(救濟)하고 나라를 다시 편안케 하였으니 덕(德)이 그 하나요, 연세 89세에 돌아가시니 수(壽) 또한 하나요, 상국 도원수(上國都元帥)로서 작(爵)을 더 봉(封)하였으니 벼슬이 또하나이다. 세 가지가 다 구비(具備)하고 결함이 없는 것은 대개 실지(實地)대로 기록(記錄)할 뿐이오, 과장해서 찬미(讚美)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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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자손(子孫)들이 계속(繼續) 줄을 이어 도한 창달(暢達)하고 난초(蘭草)를 꽂고, 옥(玉)을 꽂듯이 문호(門戶)에 광채(光彩)가 빛났다.

공(公)께서 연세가 90이 되셔도 홍안(紅顔)소년(少年)같고, 손자(孫子)의 손자(孫子)를 생전(生前)에 보셨으니 이는 또한 특이(特異)한 일이로다. 무릇 전쟁(戰爭)을 할 때에도 항상 원(元)나라 군마(軍馬)와 더불어 출입(出入)응대(應對)함에 있어 오로지 법(法)에 의해서 처리(處理)하였으며, 비록 온화(溫和)스럽게 하면서도 친압(親狎)하지 않았으며 상대방이 비록 항거(抗拒)하여도 노(怒)하지 않았으며 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구차하게 모면하려고 하지않고 죽음이 옳다고 생각하면 삶을 돌아보지 않았으니 이와 같은 하나 하나의 공업이 모두 녹권(錄券)과 국사(國史)에 실려 있음으로 여기에서는 자세(仔細)히 말하지 않고 다만 대강(大綱)만 기록(記錄)하노라.

나는 과갈(瓜葛)의 친분(親分)도 있고, 또 특별(特別)히 알아 주시고 대우(待遇)를 받은 자(者)이며, 또 사자(嗣子)이신 상국(相國=나라의 재상)의 간청(懇請)도 있음으로 해서 삼가 붓을 잡아 명(銘)을 쓰노라.

명(銘)하기를
큰집이 사람을 가리니 오직 기둥과 초석(礎石)이요
한서(寒暑)가 침노치 못하고 풍우(風雨)도 두렵지 않을새라
어천만년(於千萬年)을 두고 무너짐이 없으시라
높고 높으신 우리 공(忠烈公)은 주공(周公)에 비(比)하여 또한 크시며
좌명(佐明)의 공(功)과 정란(定亂)의 책(策)으로
지금까지 삼한(三韓)의 백성(百姓)들이 그 혜택(惠澤)을 받았으며
국노(國老)께서 영원(永遠)히 가시니 천지(天地)가 아득하고
사람들은 갈 바를 몰라 금석지감(今昔之感)을 금치 못하노라
고향(故鄕)승지(勝地)의 만산송백(滿山松栢)은 그 조상(祖上)의 영험(靈驗) 있어
길지(吉地)를 택(擇)하여 유택(幽宅)을 정하니 유원(遺願)이 분명(分明)한데
무엇을 다시 택(擇)하리오
공(公)은 자신(自身)이 홀로만 편안(便安)하려 하지 않으시니
자손(子孫)이 그 음덕(蔭德)을 입으리라

대덕(大德) 4년(=1300) 경자(庚子) 9월
전 정헌대부 밀직사 좌승지 판비서시사 문한학사 충사관 수찬관 지제고(前 正獻大夫密直司左承旨判秘書寺事文翰學士充史館修撰官知制誥) 이 진(李 ) 지음(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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