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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충렬공 金方慶 90-1---충렬공 성품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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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 작성일04-08-17 11:59 조회1,4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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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사》 제104권 - 열전 제17 >

김방경이 토적사(討賊使) 상장군 ★변윤(邊胤), 장군 ★조자일(趙子一), ★공유(孔愉) 등이 반적들이 ▲금성(錦城-나주)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도 구원하지 않았던 사실을 탄핵하는 글을 왕에게 올렸고 섬에다 귀양 보내자고 요청했으나 왕은 그들을 용서하고 다만 철직만 시키었다. 공유는 환관들과 교제하고 결탁하였으므로 죄를 면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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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부상당한 군사들이 김방경이 위급한 것을 보고 소리를 내지르면서 일어나 급히 싸웠으며 김방경은 호상(胡床)에 앉아 군사들을 지휘하였는데 안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때 장군 ★양동무(楊東茂)가 몽충(蒙衝-전함)을 타고 돌격해서 싸움이 조금 풀리게 되어 포위를 뚫고 나오게 되었다.
김방경이 장군 ★안세정(安世貞), ★공유(孔愉) 등이 구원하러 오지 않았던 죄를 들어서 그들을 베려고 하였으나 아해가 말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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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경은 적군이 붕괴되는 것을 보고 그를 추격하여 남, 여 만여 명과 전함 수십 척을 획득하였는데 남은 적들은 탐라로 달아났다. 김방경이 진도에 들어가서 쌀 4천 석과 재물, 보배, 기구, 병기 등을 얻어 모두 왕경에로 운반해 가게 하였고, 역적들에게 강요당하여 항복하였거나 추종하였던 양민(良民)들은 모두 자기 생업에 다시 종사하게끔 하고 개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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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경이 말하기를 “다만 큰 괴수들만 죽이려 할 뿐이니 너희들은 겁내지 말라!”고 하고 그 우두머리인 ★김윤서(金允敍) 등 6명을 붙잡아다가 네거리에서 참형에 처하였고 그들과 친당(親黨) 35명을 사로잡아 항복한 반군 1천3백여 명과 함께 배에다 나누어 싣고 귀환하였다. 그리고 탐라의 주민들은 모두 평안히 이전처럼 안심하고 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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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들을 이끌고 귀환하다가 ▲나주 땅에 와서 사로잡아 왔던 친당(親黨)들을 베어 죽이고 나머지 사람들에 대해서는 다 어떠한 죄과도 추궁하지 않았다. 또 크게 군사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었고



▣ 《고려사》 제104권 - 열전 제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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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벌의 전역 당시 ★김선(金侁)이 물에 빠져 죽었을 때 김방경이 ★위득유(韋得儒)가 자기의 상관 김선을 구원하지 않았다 하여 임금에게 아뢰어 위득유의 관직을 파면시킨 일이 있었으며 또 낭장 ★노진의(盧進義)도 김방경을 따라 진도를 공격하였을 때 힘써 싸우지는 않고 남의 재산만 약탈하였기 때문에 김방경이 그의 재산들을 국가의 것으로 몰수해 버린 일이 있었으며



■《고려사》 제28권 - 세가 제28 > 충렬왕 1 >
충렬왕 무인 4년(1278)
겨울 10월 임자일에 왕이 왕륜사에 갔다.
계축일에 ★김방경을 첨의(僉議) 중찬(中贊) 상장군(上將軍) 판 감찰사사(判監察司事)로 임명하고 은 10근을 주었다.
갑인일에 왕이 ★김방경을 불러다가 비밀히 의논하고 이날 밤에 밀직사(使) 이분희(李汾禧)를 백령도에 그 아우 지신사 이습을 조홀도에 귀양 보내었고 그 집안의 재산을 몰수하였으며 얼마 후에는 사람을 보내 모두 바다에 넣어 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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