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金方慶 90---충렬공 성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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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 작성일04-08-17 11:18 조회1,381회 댓글0건본문
▣ 《고려사》 제104권 - 열전 제17 >
(1270년)
김방경이 홀로 군사를 거느리고 공격해 들어가니, 반적들은 전함으로 역습을 해왔는데 원군(몽고군)은 모두 퇴각하였다. 김방경이 말하기를“결승은 오늘 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적진에 돌입하니 적들이 그가 탄 배를 포위하여 사방에서 압박하면서 자기 진영 측으로 몰아 갔다.
김방경과 군사들이 죽을 힘을 다하여 싸웠으나 화살도 돌도 다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또 모두가 화살에 맞아 일어나지 못하였다. 김방경이 탄 배가 ▲진도의 기슭에 닿게 되니 적의 한 군졸이 칼날을 번득이면서 배 안에 뛰어들었다. ★김천록(金天祿)이 짧은 창으로 그를 찔러 넘겼다.
김방경이 일어나면서 말하기를 “차라리 고기 뱃속에 장사를 지낼지언정 어찌 반적들의 손에 죽겠느냐?”라고 하면서 바다에 몸을 던지려고 하였다. 그러나 시위병이었던 ★허송연(許松延), ★허만지(許萬之) 등이 그것을 말리었다.
이때 부상당한 군사들이 김방경이 위급한 것을 보고 소리를 내지르면서 일어나 급히 싸웠으며 김방경은 호상(胡床)에 앉아 군사들을 지휘하였는데 안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때 장군 ★양동무(楊東茂)가 몽충(蒙衝-전함)을 타고 돌격해서 싸움이 조금 풀리게 되어 포위를 뚫고 나오게 되었다.
▣ 《고려사》 제104권 - 열전 제17 >
(1274년)
왜병(倭兵)이 갑자기 이르러 중군(中軍)을 쳐서 검(劒)이 좌우로 부딛쳤으나 김방경은 의연하여 조금도 물러가지 않고 한 효시(嚆矢)를 빼어 소리를 가다듬어 크게 외치니 왜(倭)가 놀라 피하여 달아나므로 박지량(朴之亮)과 ★김흔(金)·★조변(趙)·이당공(李唐公)·김천록(金天祿)·신혁(新奕) 등이 힘껏 싸워 왜병(倭兵)이 크게 패하여 엎어진 시체가 삼대와 같았다.
★홀돈(忽敦)이 말하기를,
“몽인(蒙人)이 비록 싸움에 익숙하였으나 어찌 이에 비하리오.”
하였다. 모든 군사가 같이 싸워 해가 저무니 이에 해산(解散)하였다.
▣ 《고려사》 제104권 - 열전 제17 >
(1278년)
그 후에 다시 문초하니 김방경이 말하기를“우리 나라가 귀국을 받들기를 하늘을 받들 듯이 하고 귀국을 사랑하기를 친어버이를 사랑하듯이 하는데 어찌 하늘과 어버이를 배반하고 거슬러 스스로 자신의 멸망을 초래하는 일을 하겠는가? 나는 차라리 원통하게 죽을지언정 감히 무근거한 고발을 승인하지는 않겠다”라고 하였다.
홍다구는 반드시 그를 자복시키려고 모진 고문을 가하였기 때문에 몸뚱이가 온전한 데라곤 없었으며 죽어 넘어졌다가 다시 살아나기를 몇 번이나 거듭하였다.
홍다구는 왕의 측근자들을 가만히 달래기를“지금 한창 아주 춥고 비, 눈이 그치지 않는 때여서 왕도 역시 심문에 피로하였다. 만일 김방경으로 하여금 죄를 인정하게 한다면 그 한 사람에게만 벌을 줄 것이며 법에 따라 다만 귀양을 보내게만 될 것이니 고려를 위해서도 더 이상 무슨 일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왕이 홍다구의 말을 믿기도 하고 또 고문받는 정상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김방경에게 이르기를“황제가 어질고 거룩하신 분이니 장차 그대의 실정을 밝혀주고 죽이지는 아니 할 것인데 어째서 그런 고통을 받고 있느냐?”라고 한즉
김방경이 대답하기를“왕은 어떻게 이런 말을 합니까? 저는 병사의 몸으로 출세하여 직위가 재상에까지 이르렀으니 저의 간과 골이 땅바닥에 구르게 된다 하더라도 나라의 은혜를 다 갚지 못하겠거늘 어찌 일신을 아끼어 근거 없는 죄명을 둘러쓰고 국가를 배반하겠습니까?”라고 하면서 홍다구를 돌아다보며“나를 죽이려거든 죽여라! 나는 부당한 일을 가지고 굴복하지는 않겠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갑옷을 감추어 두었다는 죄를 논하여 김방경을 ▲대청도에, 김흔을 ▲백령도(白翎島)에 귀양 보내고 나머지는 모두 석방하였다. 김방경이 귀양 가게 되자 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가 가는 길을 막고 울면서 그를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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