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金方慶 91---충렬공 성품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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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 작성일04-08-17 11:20 조회1,543회 댓글0건본문
▣ 《고려사》 제104권 - 열전 제17 >
함대가 ▲추자도(楸子島)에 들러 바람이 순조롭게 불어 줄것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밤중에 돌연히 거센 바람이 불어서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모르게 되었다. 새벽이 되어 보니 벌써 탐라에 가까이 와 있었다. 그런데 바람과 파도가 세차서 전진하려고 해도 할 수 없었고 후퇴하려고 해도 할 수 없었다.
김방경이 하늘을 우러러 크게 탄식하면서 이르기를 “나라의 안녕함과 위태로움이 이번 토벌 사업 하나에 달려 있는데 오늘 일의 성패는 나에게 있지 않은가?”라고 하였다. 이윽고 풍랑이 멎었으므로 중군(中軍)은 ▲함덕포(咸德浦)로부터 진공해 들어갔다.
■ 증보 김해지리지 (김해문화원, 1996)
松嶽壇(송악단)
옛날의 松嶽堂(송악당)으로 金剛社의 서북 약 200步許에 있는 작은 구릉으로서 神祠(신사)를 松嶽堂이라고 했다.
고려의 충렬왕 즉위년(1274) ★金方慶 장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 金剛社에서 留宿(유숙)했는데, 그때 개경의 松嶽神을 이곳에서 제사지내고 戰勝을 빌었으므로 이 구릉을 松嶽堂이라 부르게 되고, 김해 사람도 城隍神과 함께 반드시 제사를 지냈다.
세종때 지리지를 보면 府北 3里에 있는 [盆山城隍護國之神](분산성황호국지신)에게 守令이 行祭한다고 나와 있다.
지금은 高麗葬터, 白雲臺라고도 부르고 있다.
■ 국역 김해읍지 (김해문화원, 1984)
松嶽壇(송악단)
府北 3里에 있음. 고려장군 ★金方慶이 일본을 토벌할 때 여기서 빌어 신령의 도움이 있었다. 지금 폐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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