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충렬공 金方慶 97---충렬공 영정4 (김해부 송악단 충렬공 영정)

페이지 정보

일송정 작성일04-08-18 16:00 조회1,549회 댓글0건

본문

1937년 그리고 1956년에 발간된 안동김씨보감(화수록)에 실려 있는 충렬공 영정은 김해부 송악단에 있던 영정이라고 합니다. 이 영정은 지금도 일부 재실(증평 남하리 경모재 등)과 문헌(대호군공파보 등)에 보관 또는 게재되어 있습니다.



■1937년(정축) 9월에 발행된 안동김씨화수록 권2
■1956년에 발간된 안동김씨보감
<원문>
忠烈公 尊影
高麗國都元帥金方慶
忠烈公
高麗元宗朝에 金海府松岳堂은 公이 南征時에 留次金剛社하사 祀松岳之神立堂也러니 邑人이  設 忠烈公尊影하고 兼祀 故로 以傳于世라 事在文獻備考

<번역문>
고려국 도원수 충렬공 김방경 영정
고려 원종조에 김해부 송악당은 충렬공이 남정시(일본정벌시)에 이곳 금강사에 머무르면서 송악의 신위에 제사를 지낸 곳이다. 고을 사람들이 여기에 공의 영정도 함께 모시고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졌다. 이 일은 문헌비고(증보문헌비고?)에 기록되어 있다.
http://iandongkim.com/bangyeng34.jpg

■ 증보 김해지리지 (김해문화원, 1996)
●松嶽壇(송악단)
옛날의 松嶽堂(송악당)으로 金剛社의 서북 약 200步許에 있는 작은 구릉으로서 神祠(신사)를 松嶽堂이라고 했다.
고려의 충렬왕 즉위년(1274) ★金方慶 장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 金剛社에서 留宿(유숙)했는데, 그때 개경의 松嶽神을 이곳에서 제사지내고 戰勝을 빌었으므로 이 구릉을 松嶽堂이라 부르게 되고, 김해 사람도 城隍神과 함께 반드시 제사를 지냈다.
세종때 지리지를 보면 府北 3里에 있는 [盆山城隍護國之神](분산성황호국지신)에게 守令이 行祭한다고 나와 있다.
지금은 高麗葬터, 白雲臺라고도 부르고 있다.


■ 작성자 :郡/김태영 작성일 : 2002/08/27 16:41 (from:61.40.41.61) 조회 : 48
금강사(金剛祠)에서 서북쪽으로 2백 보쯤 되는 지점에 있는 작은 언덕 위에 신사(神祠)가 있는데, 송악당이라 한다. 전설에는, "고려 원종(元宗)이 원 나라의 명을 받들고 장군 김방경(金方慶)을 보내어 동쪽으로 일본을 정벌할 때에 금강사에 머물렀다. 그때에 이 언덕에서 송악의 신에게 제사하였다." 한다. 고을 사람들이 그대로 따라 제사하여서 이 고을의 성황당 신에게 제사하는 자는 반드시 여기에도 겸해서 제사지낸다.
동국여지승람에서


■ 작성자 :김태영 작성일 : 2003/12/25 10:32 (from:61.40.37.156) 조회 : 42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제9권 (9)
[丘] 모으다(聚). 4정(井)이 1읍(邑)이고 4읍이 1구(丘)이다.
[송악소구(松岳小丘)]: 고려 원종(元宗)이 원나라 황제의 칙명으로 김방경(金方慶)을 보내 동쪽으로 일본을 정벌할 적에 군사들이 합포(合浦)에 이르러 송악(松岳)의 작은 언덕 위에 주둔 하였다. 이 언덕에서 송악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이 고을 사람이 그로 인하여 지금까지 제사를 지내고 있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32 昌原都護府 ‘山川’ ‘合浦’>
합포(合浦): 지금의 경남 마산시 지역을 가르킴.


■ 김해시청 답변
현재 송악단이 있던 곳은 김해 구산동 백운대고분 (경상남도 기념물 제223호) 으로 지정되어 있는 구릉의 하단부입니다. 김해여고 뒤편과 산복도로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재골 약수터 가는 길 중간에 있습니다.
승용차를 이용하실 경우, 동김해IC에서 활천고개를 지나 산복도로를 통해 삼계, 진영 쪽으로 가시다가 왼쪽편에 보이는 절개된 산봉우리 모양의 언덕 하단부에 백운대라는 비석이 있는 곳이 송악단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주변환경은 동상대상지구 택지개발사업으로 인해 구획정리되었으며, 잔존한 유적 등은 없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