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金方慶 132---상락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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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 작성일04-08-27 09:00 조회1,838회 댓글0건본문
(안동시 남후면 단호리) 상락대와 강건너 (안동시 풍산읍 회곡리) 충렬공유허지는 충렬공 선대 때부터 정착하신 우리 가문의 발상지이자, 상락군 휘利請(이청), 상락군개국공 휘方慶(방경)을 비롯한 고래로 수많은 선조님들께서 상락을 이름하여 훈작을 받은 본향으로 면면히 이어온 우리 가문의 영원한 고향이다.
1. 옛 기록
안동지역의 대표적인 향토지인 영가지(1608년)의 방리조에 실리기를 "-----상락대는 안동부에서 25리가 되는 檜谷村(회곡촌)의 남쪽 강가의 벼랑이다. 상락군 김방경이 일찍이 遊賞(유상)했던 곳임으로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다. 동쪽에 馬巖(마암)이 있어 깍아 세운 듯 천길이나 되는 바위절벽이고, 마암의 서쪽은 돌로된 臺(대)가 둘러있어 기이한 경치가 형용하기 어려울만치 아름답고, 아래쪽의 맑은 호수는 배를 띠울 만하고, 위쪽에는 수십인이 앉을만하다. 돌 사이에 菲菜(비채 =부추의 한가지)가 많이 살아 있는데 전하는 말로는 상락군이 심은 것이라 한다."
⇒ 상락대 단숨에 성큼성큼
충렬공 할아버지께서는 노후에 고향인 지금의 안동시 풍산읍 회곡리에 사시면서
회곡동 맞은 편 낙동강 건너 상락대(上洛臺)를 매일 아침 오르실때
단숨에 성큼 성큼 오르시는 걸음걸이와 기골이 장대 하셨다는 전설 같은 말씀을
저 어릴적 조부님 아버님께 들어 왔습니다.---제공 (의성 김정중)
2) 상락대와 낙암정
회곡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바라보면 마을 앞의 소는 낙연이며, 그 앞에 단호리로 건너가는 나루터가 있다. 드넓은 낙동강과 함께 절벽이 눈 아래로 펼쳐지는데, 맞은편 강가의 깍아지른 듯한 수직의 절벽이 낙동강 강물과 어우러지는 경치가 일품으로, 절벽 가운데 가장 우뚝한 지점이 바로 상락대(上洛臺)이다. 강굽이가 북서로 꺾이는 아랫절마을 대안(對岸). 길게 이어진 철길 절벽이 검푸른 강물 소(沼)를 굽어보는 山水의 기경(寄景)이 펼쳐지는 곳이다.
상락대는 현행 행정 구역상 남후면(南後面) 단호리(丹湖里)에 속한다. 옛날에는 회곡나루에서 강을 건너 맞은편에 있는 단호로 갔다고 한다. 그 아래 못이 있는데 배를 대고 오르면 石臺는 수십명이 앉을만큼 넓다. 바위틈에는 부추가 많이 나 있는데 충렬공께서 심은 것이라고 한다.
상락대에서 江기슭을 거슬러 굽이를 돌아 오르면 江心에 드리운 절벽 위에 고색창연(古色蒼然)한 한 채의 정자 낙암정(洛巖亭)이 있는데, 세종대의 문신으로 흥해배씨인 낙암(洛巖) 배환(裵桓, 1379-?, 두문동72현의 한 사람인 배상지<裵尙志>의 아들)이 은퇴하여 만년을 지내던 별장이다.
상락대에 서 보면 江을 사이에 둔 들녁 저편에 마을이 빤히 건너다 보이지만 고요하고 깊숙한 맛은 그대로 속세를 멀리 떠난 심산 유곡이다. 등 뒤에는 온통 울창한 숲과 천길만길의 위태로운 절벽이 저 멀리에까지 이어 뻗고 앞은 널따란 소를 이루어 검푸른 강물이 유유히 굽이치며 태고(太古)의 자연 그대로 원시의 정적이 고스란히 이어 흐르는 천고의 비경(秘境)이다.
3. 상락대비 건립
상락대 정상에는 낙락장송이 우뚝 서 있고 절벽 아래는 낙동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충렬공께서 젊으신 시절에 무술을 연마하시고 공께서 거처하시던 별장이 있던 곳을 영구히 기념 보존하기 위하여 수십년 전에 안동군수로 있던 재환씨와 후손 대용, 범용 제씨가 기념비를 세웠다. 어느 때인가 이 비가 넘어져 강으로 유실되었다.
1996년 우리 문중에서 40만원을 예산에 반영하여 상락대를 복원한 바, 복원한 그 자리가 옛 상락대 자리가 아님이 그 마을 노인들의 증언으로 밝혀져 원 위치를 확인한 바, 현 장소에서 약 200미터 떨어진 곳에 옛날 좌대(坐臺)가 확인되어 1997년 봄 3월 9일 원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4. 상락낭자 전설
충렬공 할아버님을 너무나 사모하던 한 낭자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는데 그 낭자의 유언에 따라 상락대 인근에 장사 지냈고 그 자리에는 지금까지도 풀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원래 상락대에는 상락대비가 존재했으나 동네사람들이 일이 잘 안되면 그것이 상락대비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비를 강에 버렸다고 한다.
수년전에 우리 문중에서 상락대비를 찾기 위하여 상락대 정상부근을 뒤졌으나 찾지 못하고, 동네의 100살이 넘은 어른으로부터 구전되어오는 위치를 전해들어 파보니 상락대비 좌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좌대를 꺼내어 현재의 상락대비를 세웠는데, 그 위치가 바로 풀이 나지않는 그 위치였다 한다. ---전설제공 (안동 김봉수)
5. 상락대를 유상하고 노래함
권호문(1532∼1587)의 문집 송암집과 김성일(1538∼1593)의 문집 학봉집에 상락대를 유상하고 노래한 시가 실려 있다.
<민족문화추진회 홈페이지>
1. 遊上洛臺 示同舟人 (서명 : 松巖集 저자 : 權好文 페이지 : 203)
2. 上洛臺又次一? (서명 : 松巖集 저자 : 權好文 페이지 : 217)
3. 柳校理而見訪上洛臺 有詩 求和 (서명 : 松巖集 저자 : 權好文 페이지 : 251)
4. 九月望 遊上洛臺二首 (서명 : 松巖集 저자 : 權好文 페이지 : 253)
5. 三月望 與徐城主君受益同遊上洛臺 (서명 : 松巖集 저자 : 權好文 페이지 : 309)
6. 上洛臺 (서명 : 鶴峯集 저자 : 金誠一 페이지 :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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