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상주와 上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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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9-06 12:02 조회1,421회 댓글0건본문
■ 동문선 제104권
치어(致語)주B-001
★상주 연회의 치어[尙州宴致語]주C-001
김부의(金富儀)주D-002
백년이 과연 얼마인가. 놀며 즐기는 것이 먼저이매, 사사(四事) 아울러 얻기 어려움을 고인도 탄식하였나이다. 바야흐로 아름다운 손님을 우연히 서로 만났으니, 마땅히 큰 잔치를 베풀어 술마시며 오래 머물게 해야 하겠나이다. 삼가 생각하건대, 목수상공(牧帥相公)께서는 학식은 기미(幾微 형태로 나타나기 이전)를 뚫어보시고, 덕망은 군국(軍國)에 높으시와, 수레를 타고 서원(西垣 중서성 (仲書省))의 법부 종사로부터 나오시어 ★상락(上洛)의 수신(守臣)이 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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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약의가 송 나라로 갈 사신의 임무를 받았다. 꿈이 먼저 변수(?水)에 날으매, 수레가 ★영가(永嘉)에 움직이고자 합니다. 이제 마침 사신의 초헌(?軒 가볍고 작은 마차)을 만나 잠깐 행색(行色 길을 떠나려고 차비하고 나선 모양)을 머무르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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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B-001] 치어(致語) : 경사가 있을 때에 임금에게 올리던 글. 치사(致詞).
[주 C-001] ★상주 연회의 치어[尙州宴致語] : “목사(牧使)이환(李還)과 점군사(點軍使) 한주(韓柱)가 ★안동지부(安東知部) 홍약이(洪若伊)와 같이 연회한다.”는 원주가 있다.
[주 D-002] 김부의(金富儀) : “때에 ★상주원이 되었다.”라는 원주가 있다.
***김부의(金富儀)
1079(문종 33)∼1136(인종 14). 고려의 문신. 본관은 경주. 초명은 부철(富轍). 자는 자유(子由). 아버지는 국자좨주 좌간의대부(國子祭酒左諫議大夫) 근(覲)이며, 부식(富軾)의 아우이다.
■ 동문선 제83권
서(序)
만덕산 백련사 정명국사 시집 서(萬德山白蓮社靜明國師詩集序)
임계일(林桂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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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가 이미 늙게 되자 자기 자리를 물려주려고 하니, 스님은 곧 몸을 빼서 ★상락(上洛) 공덕산(功德山)으로 피하였다. 그 즈음에 현 상국(相國) 최자(崔滋) 공이 ★상락의 태수로 있으면서 미면사(米麵社)를 창건하고 맞아들이므로 스님은 거기서 늙을 작정이었는데, ---
■ 상주시청 홈
대승사(大乘寺) : 산북면 전두리 사불산(四佛山,912.9m)의 중턱에 자리잡은 삼국시대의 거찰(巨刹)이며 한국 불교사에 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한 찬란한 역사를 지닌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다. 창건의 내력은 신라 진평왕 9년(587)에 진평왕이 사불산 산마루에 있는 사면석불상(四面石佛像) 옆에 창건했다. 진평왕은 한 승려<망명비구(亡名比丘)>를 청하여 절을 맡기고 사면석불에 공양을 올리게 했다.
고려 고종때(1213~1259) ★상주목사 최자(崔滋)는 이 절의 서남쪽에 있는 백련사(白蓮寺)를 새롭게 단장했으며, ---
***문경 공덕산(913m) : 사불산이라고도 함. 해발 913m인 공덕산은 경북 문경시 산북면과 동로면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최자(崔滋)
1188(명종 18)∼1260(원종 1). 고려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초명은 종유(宗裕) 또는 안(安). 자는 수덕(樹德), 호는 동산수(東山#수04). 명유(名儒)인 문헌공 충(#충01)의 6대손이며, 우복야 민(敏)의 아들이다. ---1212년(강종 1) 문과에 급제하여 ★상주사록(尙州司錄)이 되었는데, 치적이 우수하여 국자감 학유(國子監學諭)에 이르렀다. ---고종 때 정언을 거쳐서 ★상주목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 보한집 (최자 지음, 2003, 구인환 엮음, 신원문화사)
p.180
나(=최자)는 ★상락(上洛) 장서기(掌書記)1)로 있다가, 후에 그곳 태수로 부임하였는데, 임지에 가서 내가 거처하던 청사를 헐어 버리고 난간을 작은 연못가에 닿도록 하여, 그것을 불로정(不老亭)이라 부르고 그 정자 앞에다가 꽃과 대나무를 심었다.
임기가 차서 4년만인 정미년 봄에는 임금님 명에 따라 옥띠를 띠고 동남로(東南路)로 나아가게 되었고, ★상락을 순시하였는데, 목사 군수로부터 향교의 여러 유생들까지도 노래와 시로써 인계(引啓)를 바치는데 온 길거리를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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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09
내(=최자)가 ★상락(上洛)에 있을때 미면사(米麵社)를 개축하고 만덕산(萬德山) 스님들을 초대하여 회의를 가졌는데, 어느 날 저녁에 한 노승이 서탑을 가지고 와서 문간에서 아뢰기를,
"나는 권학사(=權適)의 손자로 사군(使君)과는 친척이 되는데, 내가 이 서탑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대가 절을 창건하였다기에 이에 바치는 것이오." 라고 하였다.
그때 마침 중들이 영재(領齋)에 모여 있었는데 만덕사 주지 천인(天因)이 거기 끼어 있다가 그 말을 듣고 놀라 감탄하여 시를 지어 찬양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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