永嘉郡(영가군), 福州(복주), 그리고 安東大都護府(안동대도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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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9-05 00:07 조회1,693회 댓글0건본문
■ 안동시청 홈페이지
고려시대 (태조)
- 태조 13년(신라 경순왕 4년, 서기 930년) 이곳 병산에서 태조왕건과 후백제
의 견훤 싸움에서 이 고을 성주 김선평(金宣平)과 고을 인물 권행(본래 김씨)
, 장길(일명 정필)등이 왕건을 도와 크게 공을 세움으로써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시켰다.
- 기후(其後) ★영가군(永嘉郡)으로 고치다.
현종 3년 (1012)
- 안무사(安撫史)를 두었다가 동9년(1018년) 지길주사(知吉州使)로 고치고
동 21년 다시 ★안동부(安東府)로 하였다.
명종 27년 (1197)
- 남적 김삼(南賊 金三), 효심(孝心) 등이 주(州), 군(郡)을 약탈하매 부(府)에서
이를 평정하는데 유공하여 ★도호부(都護府)로 승격
신종 7년 (1204)
- 동경(東京) 야별초(野別抄) 패좌(悖佐) 등의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켜 부에
서 이를 평정함에 유공하여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
충렬왕 34년 (1308)
- ★복주목(福州牧)으로 고쳐 목사(牧使)를 두었다.
공민왕 10년 (1361)
- 공민왕 10년(1361) 홍건적 난리에 王이 이곳까지 피난할 당시 고을 사람들이
정성껏 받들어 다시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승격
1. 永嘉郡(영가군)
▣ 김방경 묘지명 (1300년, 이진 撰)
무릇 천하에서 존경을 받는 것이 세 가지가 있으니 一은 德이요 一은 壽요 一은 爵이니 군자가 처세함에 있어 그 하나 둘을 얻기도 어렵거늘 하물며 그 셋을 다 얻을 수 있겠는가? 그 세가지를 결함이 없는 분은 오직 우리 상락공(=김방경) 뿐이다.
公의 성은 김이요 휘는 方慶이니 ★영가군 사람이다.
■ 김승용묘지명(金承用墓誌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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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멸 ---) 천력<天曆, 원나라 문종(文宗)의 연호> 二 년 기사(一三二九)년 三월 갑술(甲戌)에 선수선무장군(宣授宣武將軍) 관고려국만호(管高麗國萬戶) 광정대부(匡靖大夫) 밀직사(密直使)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상호군(上護軍) 김공이 표(表)를 받들고 원나라에 하례(賀禮)하고 돌아오다가 압록강을 건너면서 병에 걸려 신안(新安)의 여관에서 죽었다.
이달 경진(庚辰)일에 영구(靈柩)가 역마(驛馬)로 운송되어 서울에 들어와서 고류동(孤柳洞)에 있는 사저(私邸)에 빈청(殯廳)이 마련되었다. 다음 달인 四월 병신(丙申)일에 묵동(墨洞)의 북쪽 산 기슭에 장사 지냈다. 아아! 공의 휘(諱)는 승용(承用)으로 ★영가<永嘉, 안동(安東)의 고호>가 본관이다.
▣ 고려사회사 연구 (1981, 허흥식)
<1300년대 제작 광산김씨 김련-김진 호구단자>
典儀 高麗戶籍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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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都西部香川11里癸酉年坊?광정대부정당문학예문관대제학지춘추관사상호군 金 (김진)戶口年42本化平府丁酉年秋場製述
-----(생략)-----
(김진의)妻 영가군부인 권씨연13?본복주
(김진 처의)父 광정대부첨의령피상호군치사 권윤명(=김방경 사위) 고명 준 졸
(김진 처의)母 ★영가군부인김씨(=김방경 딸) 본안동부고
(김진 처의)外祖 선수중봉대부도원수추충정난정원공신광정대부삼중대광첨의중찬상장군판전리사사세자사 ★상락공 증시충렬공 김방경
-----(생략)-----
▣ 고려시대 기록문화 연구 (2002, 남권희, 청주고인쇄박물관)
▣ 허흥식(1991) [1302년 아미타불복장의 조사연구], 온양민속박물관 9-46쪽
▣ 허흥식(1994) [한국중세불교사연구], 서울 일조각 212-247
<1302년 아미타불 腹藏 發願文>
-----<생 략>-----
DB5. 墨書 發願文
淸信戒弟子高麗國永嘉郡夫人金氏
金敏成 / 金孝印 / 宋氏夫人 / 宋耆 / 崔文本 / 上洛公金氏 / 朴氏夫人 / 崔 / 田氏夫人
靈駕等願承
阿彌陀佛慈悲之力頓脫無明超到樂方見
佛聞法速得解脫還及一切弟子與一切含靈俱霑利樂臨命終時移障碍承
佛神力往生淨域速成妙果還入塵勞廣度群迷謹誌
청신계제자고려국 ★영가군부인 김씨
김민성 / 김효인 / 송씨부인 / 송기 / 최문본 / ★상락공 김씨 / 박씨부인 / 최온 / 전씨부인
영가등원승
아미타불자비지역돈탈무명초도락방견
불문법속득해탈환급일절제자여일절함영구점리락임명종시이장○승
불신력왕생정역속성묘과환입진로광도군미근지
▣ 전의이씨 보첩 (2004.8.24, 이왕섭 제공)
李子원
直文翰書 追封 正順大夫 成均館大司成
★永嘉郡夫人 安東金氏 父檢校軍器監 惟銑 祖同正 孝維 曾祖直史館 敏成
▣ <이언충 묘지명>
휘 자원(子원)은 공의 부친이 되며, 고(故) 검교 군기감(檢校軍器監) 김유선(金惟銑)의 딸로 봉작이 ★영가군부인(永嘉郡夫人)은 공의 어머니이다.
---아들인 이언충(李彦 )의 묘지명은 무인(戊寅:1338)년에 고려말기의 대학자인 최해가 찬하였는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이 묘지명에 기록된 외조부의 기록은 검교 군기감(檢校軍器監) 김유선(金惟銑)의 딸로 ★영가군부인(永嘉郡夫人)으로 봉작(封爵)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디지털한국학 홈
이언충(李彦 ) 1273.5.4生 ∼ 1338.10.20卒
고려의 문신(文臣). 본관은 전의(全義). 자(字)는 입지(立之). 응양군 대장군(鷹揚軍大將軍) 이천(李仟)의 손자이며 직문한서 증 대사성(直文翰書贈大司成) 이자원(李子원)의 아들로 문장공(文莊公) 이혼(混)의 조카[猶子]이다.
어머니는 검교 군기감(檢校軍器監) 김유선(金惟銑)의 딸로 ★영가군부인(永嘉郡夫人)으로 봉작(封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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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유적총람 3편>
【유적명칭】영호루 유허비(映湖樓遺墟碑)
【소 재 지】경상북도 안동시 당북동
영호루 유허비(映湖樓遺墟碑)는 높이 179cm, 폭 61cm, 직경 31cm이며, 김일대가 글을 짓고, 남장수가 글을 썼다. 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가부의 남쪽 관문인 이 곳이 영호루의 옛터다. 배야임수로서 앞으로 봉황암과 봉지산이 병풍같이 둘러있고 낙동강 700리 맑게 흐르니 사시지경이 장관이라 춘화 경명에 파형이 문체를 이루고 호월천리에 상하 누경이 영수만경하므로 이름하여 영호루라 하고 영남 삼대루의 하나로 명성이 높다".
그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밀양의 영남루와 진주의 촉석루는 여말에 건립되었으나 영호루는 고려 충렬왕 초년(1274) 명현 김방경이 일본 원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향인 안동에 들려 이 누에서 시를 지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고려중엽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에 몽진하면서 이 누에 자주 소일하였고 환도후에 영호루 삼자의 어필을 하사하니 공민왕 17년(1368) 안동 판관 신자전이 누각을 중건하고 액자에 금을 입혀 편액하였다.
---생략---
■역주 고려묘지명집성(하) (2001.12월, 김용선,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p.862
249. 채홍철(蔡洪哲) 묘지명
--전거 [가정집]12
--연대 충혜왕복위 원년(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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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김씨는 ★영가군부인(永嘉郡夫人)으로 역시 아들이 귀하게 되자 대흥현군(大興縣君)에 봉해졌는데15> 아버지 아무개<金方慶>16>는 벼슬이 첨의중찬 상락공에 이르렀고 (元) 세조 황제의 조정에 공이 있어 중봉대부 도원수에 제수되었다. 부인은 유순하고 아름답고 정숙하고 착하여 규문(閨門)의 법도를 잘 지켰으며, 자녀 5명을 낳았다.
■ 한강집 (정구 저)
외선조(外先祖) 김 충렬공(金 忠烈公)의 무덤에 제문
삼가 고합니다. 부군(府君)의 위대하고 거룩한 공은 역사에 빛나서 우리나라의 후세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 흠모하는데, 더구나 부군의 외손인 우리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영가군부인(永嘉郡夫人)은 부군의 손녀(=충렬공 3자 문영공 김순의 큰 딸)로서 우리 청하군 부군(淸河君府君 정책(鄭責)에게 시집와서 설헌(雪軒 정오(鄭오)과 설곡(雪谷 정포(鄭言+甫) 두 아들을 낳았는데 이들 두 선생은 문장이며 기풍과 절개가 백대를 풍미 하고 있습니다.
■ 양촌선생문집 제40권
행장 行狀
목은 선생(牧隱先生) 이 문정공(李文正公) 행장
공(公)의 휘는 색(穡)이요 자는 영숙(穎叔)이며 호는 목은(牧隱)인데, 본관은 충청도 한주(韓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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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신축년 병란을 겪은 후에 학교의 교육이 폐이(廢弛)되었으므로, 임금께서는 이를 다시 일으키려고 성균관(成均館)을 숭문관(崇文館)의 옛 터에다 다시 지었다. 강의(講義)를 맡을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당시의 경술에 능한 선비를 뽑았으니, ★영가(永嘉) 김구용(金九容)ㆍ오천(烏川) 정몽주(鄭夢周)ㆍ반양(潘陽) 박상충(朴尙衷)ㆍ밀양(密陽) 박의중(朴宜中)ㆍ경산(景山) 이숭인(李崇仁) 같은 사람들인데, 모두 다른 관직에 있으면서 학관(學官)을 겸하게 했으며, 공으로써 그 장(長)을 시켰으니 대사성(大司成)을 겸직한 것도 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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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福州(복주)
■ 동문선
★福州(今安東) 映湖樓 /안동 영호루를 지나며
---충렬공 김방경
山水無非舊眼靑 /산천은 변함없이 옛모습 그대로 있고
樓臺亦是少年情 /루대도(복주루를 말함) 또한 소년시절의 정이 그대로구나
可憐故國遺風在 /고국은 아직도 옛풍습 그대로 남아있고
收拾絃歌慰我行 /아름다운 거문고소리와 노래는 나의 갈길을 위로해 주도다
登★福州映湖樓 /안동 영호루에 올라서
--- 도첨의공 김흔 (충렬공 둘째아들)
十載前遊入夢淸 옛날 놀던 일 꿈속에 환하게 들어 오며,
重來物色慰人情 다시 오매 풍경이 인정 위로하네.
壁間奉繼嚴君筆 벽에 걸린 아버님글 이어 쓰니,
堪타愚兒萬戶行 어리석은 아들 만호 걸음이 부끄럽네.
■역주 고려묘지명집성(하) (2001.12월, 김용선,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p.929 265. 김영돈(金永暾) 묘지명
-전거 : 안동김씨대동보(1980)
-연대 : 충목왕4년(1348)
원 고려국(有元 高麗國1>) 추충병의익찬공신 벽상삼한 삼중대광 상락부원군 김공(金公) 묘지명 및 서문
공의 이름은 영돈(永暾2>)이고, 자는 휘곡(暉谷)이며, 그 선대는 신라왕(新羅王) 김부(金傅, 敬順王)로부터 나왔다. □□□□□□□□왕(王)이 중세에 혼인하였기 때문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로 옮겨 거주하게 되었는데, 그 부(府)는 지금의 ★복주목(福州牧)이다. 13대손인 판도첨의사사 □□□□ 방경(方慶3>)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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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至正) 8년 (충목4, 1348) 8월 일
칙수 장사랑 광정대부 검교첨의참리 예문관대제학 지춘추관사
안산군(安山君) 안진(安震)이 짓다.
■ 상주지명총람 (2004, 조희열 편, 문창사)
1361년 공민왕이 ★福州(지금의 안동)으로 피난했다. <동사강목>
3. 安東大都護府(안동대도호부)
▣ 김방경 행장 (1350년, 안진 跋)
김공方慶은 ★안동대도호부 사람으로서 병부상서 한림학사로 중서령에 추봉된 孝印의 아들이고 직사관 敏成의 손자요 신라 경순왕 김부의 9세손이다. (구보에 15세손이라 함은 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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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락공(上洛公)의 오대손(五代孫) 김군(金君) 명리(明理=문온공의 아드님)가 이 도(道)를 지나다가 고향(故鄕)인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에 와서 내게 말하기를 "우리 선조(先祖)의 행장(行狀)이 집에 있으나 누구의 손에서 이루어졌는지 알지 못해 대유(大儒)에게 물어 간행(刊行)코자 하나 이럭저럭 하다가 쳐 성취(成就)하지 못했으니 ---
영락(永樂)19년 신축(辛丑=세종3년=1421)년 10월
가선대부 판★안동대도호부사(嘉善大夫 判安東大都護府事)
대영 최개(大寧 崔開) 말편(末篇)에 기록함
▣ 이시발(1569-1626) ---김도의 외손자
○안렴사공(휘사렴)의 6대손인 병천 입향조 김공언의 둘째 아들인 김도의 외손자인
(이대건-)이시발은 경주이씨로 1602년 ★안동대도호부사로 재직시 출렬공(휘방경)의 묘갈을 건립하였고, 그의 유고집인 벽오유고에 충렬공 墓誌가 수록되어 있으며, 김도의 사위 이대건(李大建,) 이시발의 손자 이인혁(李寅爀)은 오창 송천서원에 배향되어 있다.
*****김공언---2/4김도---따님(+이대건)---이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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