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락촌 회곡동 이야기 02---1295년 상락군개국공(上洛郡開國公) 식읍지는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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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11-08 00:33 조회1,458회 댓글1건본문
○ 충렬공 84세, 1295년
---상락군개국공(上洛郡開國公)을 봉(封)하시고 식읍(食邑) 1천호에 식실봉(食實封) 삼백호(三白戶)를 받으셨다.(충렬공행장)
---이어 첨의령(僉議令)을 더 주었으며 또 상락군 개국공(上洛君 開國公), 식읍(食邑) 천 호를 봉하여 실봉(實封) 3백 호를 먹게 하였다.(고려사)
---봄 정월에 홍자번(洪子藩)을 첨의령(僉議令)으로, 조인규(趙仁規)를 첨의중찬으로 삼고, 중찬으로 치사한 김방경(金方慶)에게 첨의령을 가자하였다.(고려사절요)
---김방경(金方慶)에게 상락군 개국공(上洛郡開國公)의 작위를 주었다.(고려사절요)
---"나이가 84세가 되어 --- 세자(=충선왕) 전하께서 ---임금께 아뢰니, 비답(批答)을 내려서 상락군개국공(上洛郡開國公)으로 삼았는데, 실로 분수에 맞지 않는다."
지금 새로 책봉된 상락군 개국공 경조 (上洛郡開國公京兆) 김방경(金方慶)저하는---상락군(上洛郡)에 봉하여 공(公)으로 삼으니 이는 후현(後賢)들의 길을 넓힌 것이다.
삼가 고부(古賦)를 지어서 이름하여 『단모부(旦暮賦)』라 하고 멀리서 상락공 궤장(궤杖) 아래에 바칩니다. .(동안거사집)
▶▶▶충렬공 84세 1295년에 받으신 상락군개국공, 식읍 1천호, 식실봉 300호를 받은 지역은 구체적으로 어디일까요?
충렬공께서 만년에 식읍지인 이곳 회곡리에 저택을 마련하고, 정자를 짓고, 거주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식읍 1천호에 식실봉 3백호는 꽤 넓은 지역일텐데 경계가 어디까지 인지?
아들 문영공(김순)께서 식읍을 이어받아 역시 이곳 회곡리에 거주하시고, 맏사위 정책, 외손자 정오 정포 형제가 외가인 회곡리에 정착한 듯 합니다.
현손 익원공(김사형)께서도 식실봉 300호를 받았는데, 어디인지? 익원공 자손이 세거해 내려온 곳이 아닐까 합니다.
■ 김순 묘지명 (1321, 민지 찬)
---기해년(己亥年)에 공께서 그칠 줄을 아시고 벼슬을 사퇴하셨다. 그 이듬해 8월에 선친께서 세상을 하직하심으로 유원(遺願)에 의하여 고향 선영(先塋)에 장례를 모셨다. 경술년(庚戌年) 겨울에 선친 묘소에 제사를 지내고 임자년(壬子年)에 다시 중대광 상락군(重大匡 上洛君)을 봉하여 선친의 작위(爵位)와 식읍(食邑)을 이어 받았다.
■ 충렬공 현손 김사형(金士衡)
---같은해 12월 문하우시중에 제수되고, 상락백(上洛伯)의 작위와 식읍 1천호 및 식실봉(食實封)300호를 받았다.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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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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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