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상락촌 회곡동 이야기 03---정오 정포 형제 입향, 외삼촌 김좌랑 承古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4-11-08 00:56 조회1,535회 댓글1건

본문

 

 

<안동시청 홈페이지>
청주정씨
'영가지'에 의하면 청주정씨가 안동에 살기는 공민왕때 첨의평리를 지내고 서원군에 봉해진 정오와 우간의대부를 지낸 그 아우 정포 형제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정책이 궁궐도감으로, 참소를 입어 원나라에 억류되어 있는 왕(충숙 왕)을 도운 공으로 청하군에 봉해지고 판도판서를 역임했는데, 이는 김방경의 아들인 상락군 김순의 사위로, 안동에 입향한 설헌 정오, 설곡 정보은 바로 이의 아들이다. 설헌은 문과급제로 공민왕의 사부, 첨의평리를 지내고, 그 아우 설곡은 진사, 문과로 충혜왕때 우간의대부를 지냈다.

'영가지' 방리편 회곡촌조에 '마을 어귀에 남향으로 된 큰 밭이 있으니, 예로부터 전하기를 충렬공이 여기서 살았는데, 설헌과 설곡형제도 외가로 하여, 와서 살다'라고 했음을 보아, 설헌 형제가 이곳 회곡에 입향하게 되기는 그 외가의 반연이었음을 알수 있다.

 

 

 

동문선 제11권

오언배율(五言排律)

좌랑 외삼촌에게 드리는 시[서문도 함께 싣다] [贈佐郞舅詩幷序]


정포(鄭?)

지정(至正) 2년(=1342년) 가을에, 내(=정포)가 형님 사겸(思謙, =정오)과 함께 남쪽으로 귀양왔다가 10월에 일이 있어 복주(福州)에 모여 닷새 동안을 머물렀다. 그때 외삼촌 김좌랑(金佐郞)이 복주의 전나무골[檜谷]에 한가로이 사는데, 어느 날 사겸형과 나를 청하여 놀고 유목사(柳牧使)와 양통판(梁通判)이 자리를 같이하여 주안(酒案) 사이의 담소(談笑)의 즐거움이 평시(平時)와 같아 하루 종일을 놀고 갔었다. 그 다음해 여름에 이르러 교지(敎旨)가 내려 나를 복주에, 사겸형을 청주읍(淸州邑)에 안치(安置)하게 하였는데, 막상 이르러 본즉 유목사와 양통판이 다 사직하여 갔고 외삼촌 또한 계시지 않아, 황량(荒凉)한 여사(旅舍)에 함께 즐길 사람이 없어 강산 천 리에 생각만 아득히 되풀이하였다. 한 달 남짓 있노라니 외삼촌이 서울서 돌아와 내가 유락(流落)해 있음을 불쌍히 여겨, 나를 위로할 길을 생각하여 날마다 즐거운 놀이를 벌여 산에 오르고 물에 놀면서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니, 마음이 헌칠, 정신이 흐뭇하여 영욕(榮辱)을 다 잊어 버리고 숫제 자신이 한인(閒人) ㆍ 은사(隱士)나 된 듯, 귀양살이의 신세임을 깨닫지 못할 정도였다. 아아, 인생의 모였다 헤어짐이 모두 수(數)가 있으니, 이제 내가 이곳에 귀양와 있음에 유(柳)와 양(梁)은 다 가고 홀로 외삼촌만이 계심은 어찌 하늘이 우리 두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예서 상종(相從)하게 함이 아니랴. 감탄이 그지없어서 이 시를 짓는다.

 

천리 밖에 이 몸이 귀양을 와서 / 千里身仍竄
금년에 신수가 더 야릇해라 / 今年數更奇
떠도는 신세 어디다 의탁할 것인가 / 飄零何所托
몸과 그림자만이 붙어 다닐 뿐 / 形影只相持
유학을 닦았으나 어디다 쓰리 / 儒術將安用
빈 말은 마침내 베풀 길 없네 / 空言竟莫施
세상의 웃음 살 줄 내 알았거니 / 自知爲世笑
남의 충고 듣기도 안 좋아하네 / 又不喜人規
곧은 도는 삼출주D-001을 만난다더니 / 直道連三黜
여생에 백 가지 어려움을 만났네 / 餘生遇百罹
친한 벗은 멀리서 서신도 없고 / 親朋無遠信
타관에 아는 사람 적네 / 羈旅少相知
반가울사, 내 외숙 한 분이 있어 / 好事逢吾舅
청담은 곧 나의 스승 / 淸談郞我師
성미가 피차에 서로 맞으니 / 風襟自有契
내왕도 저절로 무시로 하네 / 來往亦無期
좌상에 술병은 늘 가득하고 / 座上樽常滿
등 앞에 자리를 다시 옮겨서 / 燈前席更移
기쁨을 찾으니 마음이 흐뭇하고 / 覓歡心袞袞
체모를 생략하니 즐거움이 그지없어 / 省事樂熙熙
초목에도 화기가 뜨고 / 草木浮和氣
계산도 고운 모습 나타내는데 / 溪山有令姿
먼 마을을 나란히 말타고 가며 / 聯?村巷遠
나직한 수정에 잔 들고 앉아 / 把酒水亭卑
어초하는 늙은이와 짝을 짓기도 / 却伴漁樵老
사냥하는 젊은일 좇아가기도 / 閑追射獵兒
느낀 회포에 노래 부르고 / 感懷歌正冽
보이는 물색에 눈물 흐르네 / 覽物淚空垂
옛일을 생각하니 산간주D-002 같아서 / 憶昔同山簡
한창 겨울 습지에서 취했었네 / 方冬醉習池
파연곡 부르며 잔치 끝난 뒤 / 笙歌淸?後
등불을 들고 돌아올 그때 / 燈火夜歸時
모였다 헤어짐이 꿈과도 같아 / 聚散還疑夢
슬픔과 기쁨은 시에나 싣네 / 悲歡只有詩
가엾은 내 신세 위로되는 건 / 蹉?猶可慰
늙어도 정정한 이 몸 / ??未全衰


[주 D-001] 곧은 도는 삼출 : 춘추 때 유하혜(柳下惠)가 곧기 때문에 세 번이나 벼슬에서 쫓겨 났으나, 버리고 가지 않으므로, 사람이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곧은 도(道)로써 사람을 섬기면 어디 간들 세 번 쫓겨나지 않으리오. 굽은 도(道)로써 사람을 섬기어 하필 부모의 나라를 버릴 것이냐.” 하였다.
[주 D-002] 산간 : 진(晋) 나라 산도(山濤)의 아들. 정남장군(征南將軍)으로 양양(襄陽)을 진수(鎭守)하면서 나가 놀기를 좋아하여, 흔히 경치 좋은 습가지(習家池)에 가서 술에 취해서는 백접리(白接?)를 거꾸로 쓰고 말을 거꾸로 타고 돌아오는 등 풍류 기화(奇話)를 많이 남겼다.

 

 

 

19 한국문집총간 雪谷集 永嘉。同諸公過金佐郞 承古 舅山莊。 정포 1609 - - - -

雪谷先生集


永嘉。同諸公過金佐郞 承古 舅山莊。 003_257b

鞍馬悤悤閱數州。夕陽携手更登樓。謫來未厭湖山好。事去空驚歲月?。半壁殘燈孤館夜。傍?疏樹故園秋。欲知別後相思意。天際長江??流。

 

 

 

 

동문선 제100권

전(傳)

정씨가전(鄭氏家傳)


---도첨의찬성사로 시호가 장경공(章敬公)인 ★해(?)를 낳았고, 장경공이 부영(扶寧) 김공(金公) ★구(坵)의 딸에게 장가들어 청하군(淸河君)인 ★책(책)과 판전교시사인 이(怡)를 낳았고, 다음에 중찬치사(中贊致仕)로 시호가 광정(匡定)인 홍공(洪公) 규(奎)의 딸에 재취하여 딸 둘을 낳았는데, 대언(代言)인 ★경사만(慶斯萬)과 종부령(宗簿令)인 최광(崔廣)에게 출가하였다.

청하군이 판삼사사(判三司事)인 상락군(上洛君) 김공(金公) 순(珣)의 딸이며, 도첨의 중찬인 양천(陽川)허문경공(許文敬公) 공(珙)의 외손녀에게 장가들어 설헌(雪軒)선생 오(?)와 설곡(雪谷) 선생 포(?)를 낳았다. 전교(典校)가 모 벼슬인 아무의 딸에게 장가들어 딸 하나를 낳았는데, 판사(判事)인 곽침(郭琛)에게 출가하였다. 경씨(慶氏)는 지금 시중공(侍中公)인 복흥(復興)을 낳았고, 최씨(崔氏)는 판개성(判開城)인 맹손(孟孫)을 낳았다.

-----

 

 

 

▶▶▶설헌 정오,  설곡 정포 형제는 외가(문영공 김순)가 있는 회곡리에 입향하여 세거하였고,

 

지정2년(=1342년) 가을 귀양 왔을때는 외삼촌 김좌랑(金佐郞)이 복주의 전나무골[檜谷]에 한가로이 살면서 서울(송도)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그리고 金佐郞 承古 舅 山莊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외삼촌 김좌랑 承古는 문영공(김순)의 네 아들 영돈, 사순, 영휘, 영후 중 누구인지? 김흔 장군의 아들 承古인지? 확인할 수 없다.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