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족산과 자점의 보 그리고 화산군(김주)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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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4-11-15 22:17 조회1,434회 댓글4건본문
백족산과 자점의 보
장호원은 남쪽으로 해발402m 의 우뚝 솟은 백족산이 있고 이 백족산 남단을 휘돌아 경기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이루는 청미천이 길게 흐르고 있다.
이 백족산 남단에 청미천 상류를 막아 만들어진 보가 자점보 인데 조선 인조 임금때 인조 반정의 공신으로 영의정까지 지내며 권세를 마음것 휘두르다 역적 사건이 발각되어 죽음을 당한 김자점이 쌓았다하여 자점보라 불리워지고 있는데 거기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백족산에는 금반형이라는 묘자리가 있는데 풍수지리적으로 금반형은 묘자리중에 으뜸으로 김자점이 젊었을때 눈독을 드리다가 임금의 총애로 득세하자 부친의 묘를 그곳에 썼다. 그런데 금반형의 부족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묘에서 내려 보이는 곳에 큰물이 있어야 되는 청미천만으로 부족하여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커다란 인공호수를 만들고 거기에 사시사철 푸른 물이 고여 있게 하여 부친의 묘를 명실상부한 금반형의 명당으로 만들었다.
그 덕에 가뭄이 들때에도 근처 양민들이 보의 물을 몰래뽑아 써서 근처 일때가 흉년을 모르는 고장이 되었고 미질이 좋아 임금님께 진상하는 쌀이 되었고 그 덕분에 김자점은 권세를 누릴수 있었다 한다. 현재 남아 있는 보의 길이는 약5백미터 폭은 넓은 곳은 6미터 좁은 곳은 약 2미터 가량인데 자점보는 지금도 장호원일대의 중요한 농용수로 긴요하게 쓰여지고 있다.
<장호원-충주 우회도로, 다리 위가 백족산이고 아래가 자점의 보다>
화산군(김주) 선조님 본죽리 사당
안동김씨 수백년 世居阡(세거천) ---부회장 斗會 <대종회보 제62호, 1998. 10>
경기도 이천시 율면 本竹里는 우리 안동김씨 안렴사공파 문중의 집성촌이다. 이 곳에 우리 안동김씨가 정착하게 된 것은 충렬공 현손 안렴사공 휘士廉의 7대손인 휘澍(주) 광국공신 화산군의 葬儀(장의)를 여주군 흥천면 歸白里에 모시고 이천시 율면 본죽리에 不 之位(부조지위)를 명받아 祠堂(사당)을 建竪(건수)함으로 이때부터 우리 안동김씨의 세거가 시작된 것이다.
화산군의 향사는 연 춘추 2회 (춘:한식일, 추:추석일)에 배향하고 있으며 화산군의 문집으로는 寓菴集 3권으로 天地人이 있는데 지파 후손인 안렴사공의 19대손 文演씨가 소장하고 있다. 요즈음 후손들이 공의 유적을 영구히 보존키 위하여 여주군 공보실에 자료 일체를 갖추어 지방문화재로 상신을 하고 있다.
이렇듯 공명하신고로 공의 현손대에 이르러 1室4孝가 배출하였으니 휘銑 (官은 贈통덕랑 사헌부지평)과 선의 제 銶 (贈조산대부 사헌부지평)와 구의 제 휘錫 (송우암시열 문하 사산감역불사 통훈대부 사헌부지평)과 그의 妹氏(당시 10세) 등 4남매가 그의 어머니께서 병환이 위독하시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입에 넣으시니 병환이 소생하여 7일간을 더 연명케 하여 그 효행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자 서기 1753년 (영조 계유) 에 조정에서 증직을 하고 영조대왕께서 친필로 [一室四孝]라고 써서 賜額旌閭(사액정려)를 내리셨다. 그 정려가 폐허된 瓦家앞에 보존되어 있으며 일실사효라 쓴 영조의 친필현판은 종손인 22대손 起鎬씨가 보관하고 있다.
<화산군(김주) 선조님의 본죽리 사당>
댓글목록
김발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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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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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만형님
사진이 안보입니다. 저만 안보이는건지......
다른분들 리플 부탁드립니다.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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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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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안 보입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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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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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저는 잘 보입니다. 11. 15. 밤 10:17. 자료 올림. 10:31, 11:02, 사진 안 보임. 11. 16. 08:25, 잘 보입니다.
윤만 대부님 사진 자료 올리기 작업 숙달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게시판에서 바로 올리면 편한 데 돌아가시느라고----. 홈이 좀 넓으면 좋으련만. 언젠가는 우리터에 우리집 짓는 날이 오겠지요. 죄송합니다.
김용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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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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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윤만 대부님 감사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