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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유배길>(1)-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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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4-12-16 15:24 조회1,9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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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묵재 李文楗(영상공 김 석의 매부, 김충갑의 고모부)선생에 대한 자료를 찾기 위해 서울대 규장각의 선임연구원으로 이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신 김경숙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하였습니다. 그 후 여러 권의 연구물을 우편으로 제게 보내셨습니다. 그 중 하나인 <조선시대 유배길>이란 글을  요약하여 실어보려 합니다.

 이를 기회로 우리 문중 선조님들 중 유배길에 오르셨던 분들을 정리하고 그 분들의 유배 사유, 유배과정, 유배지, 유배기간, 유배중 쓴 글, 유배지 생활, 방환 과정 등을 살펴보는 기회를 여러분과 함께 가져볼까 합니다.


출전 : <조선시대 유배길> (김경숙. 역사비평 통권 67호 별쇄. 역사비평사. 2004. 여름)

 필자 : 서울대 규장각 선임연구원


   1. 들어가며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유배길을 떠날 때 어떻게 갔을까. 초췌한 몰골로 창살 박힌 수레에 실려 삼엄한 경비를 받으며 갔을까? 아니면 TV 사극 <대장금>의 민정호처럼 오랏줄에 묶인 채 두 세 명의 병사와 함께 걸어서 갔을까? 장금과 한상궁처럼 양반 관료가 아닌 사람들은 또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떠났을까?

 오늘날 일반인들은 여러 방송매체나 교양서적, 인터넷 등을 통하여 한국학 분야에 대해 매우 많은 지식을 쌓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도 많이 바로 잡히고 있고 일반인들도 우리 역사에 대해 꽤 높은 수준의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자주 잘못된 선입관을 갖고 역사를 바라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조선시대 유배길 또한 이런 부분의 하나이다.

 조선시대의 유배형은 유배살이 또는 귀양살이라 불려지는 형벌로, 죄인을 특정지역으로 보내 특별한 사면이 없는 한 그곳에서 기한없이 살게 하는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 형벌의 근간이 되었던 오형(五刑: 笞, 杖, 徒, 流, 死) 가운데 사형에 버금가는 매우 가혹한 것이었다.  그런데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이 유배살이를 하는 경우가 매우 빈번했다. 관직자 치고 유배길에 오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유배형의 실상을 잘 모르고 있으며 유배길의 모습에 대해서도 잘못된 선입견까지 갖고 있다. 이는 유배형의 집행과 운영에 대한 구체적 사실과 연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유배지의 배정, 압송방법, 유배지에서의 숙식 방법 등에 관한 규정, 이 규정의 실제 시행 모습 등을 여러 유배일기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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