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온공 종택 발굴 현장 참여보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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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4-12-27 12:56 조회1,536회 댓글3건본문
정신없이 종택주춧돌을 한시간여 살펴보고나니 한대의 렉스턴짚차가 들어온다.,
작업중이던 연구원들과 일하시는 분들이 저분이 박교수님이라고 한다.
박교수는 우선 발굴현장을 둘러보고 모닥불이 피워져 있는 우리(나, 광도, 태우. 발용)가 있는 곳으로 왔다. 박교수와 우리는 인사를 나누었다.
명함에은 이렇게 씌여 있었다.
단국대학교 인문학부 교수.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 소장.
문화재위원회 제1전문위원. 조계종성보보존위원회 전문위원. 교육학박사 박 경식
“안동김씨 종택을 발굴하게 된 데 대해 개인적으로는 큰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습니다. 종택 발굴을 하면서 이곳의 지형이 선사시대의 주거지 였을 가능성이 매우 많아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좀 더 많은 곳을 발굴하면 선사시대의 흔적을 발견될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되면 종택발굴사업에는 많은 애로가 있을 것이어서 가슴 조리며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선 종택의 규모가 99칸이라고 전해오나 그렇게는 볼 수 없고요.
생각보다 안채의 규모가 작아보여서 지금 안채의 동쪽 부분을 더 발굴해보라고 지시했습니다. 안채보다는 별채와 사랑채의 규모가 대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구요. 또 종택에 딸린 하인들이 살았을 부속건물들이 발견 되지 않고 있네요. 물론 이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만, 현재 발굴지역을 넓혀가지 못한 상태여서 이에 대해서는 좀 미흡합니다. 그리고 출토 유물들도 보잘것 없는 것도 이상합니다. 현재로서는 조선후기 이후의 유물이 조금 발굴 된 상태입니다. 생활용품의 유물도 그리 많지 않구요. 종손부의 말씀을 들어보면 육이오때 종택이 불타고 난 후 들어와 보니 동네 사람들이 구들장까지 뜯어 갔었다는 말씀으로 미루어 이때 많이 없어 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사랑채의 규모는 상상보다 대단함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각이 있었을 기둥 네 개중 한개는 부러져 있지만 그 웅장함이 놀랠만합니다.“
문온공부터 현종손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선조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다.
나는 부족하지만. 문온공(척약재)할아버님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구전되어 오기를 금수정의 지으셨다는 성천도호부사공(휘 김명리)의 내력에서부터, 고려사를 편찬하신 직제학공(휘 김맹헌)께서 노후 이곳에 은퇴하시어 말년을 보내셨으며, 지금도 근처 종산에 영면하고 계시며 이후 참의공(휘 김자양), 청도군수공(휘 김예생), 가선대부 경상좌병사공(휘 김윤종), 공주판관공(휘 김윤선), 금수정의 기록으로는 최초로 나오시는 금옹공(휘 김윤복), 이후 별제공(김진기), 의금부도사공(김대섭), 철원부사공(김확), 그리고 부사공의 매부이신 지봉이수광. 교산 허균과 이곳 금수정에 얽인 인물들,봉래 양사언, 사암 박순, 한음 이덕형, 번암 채제공, 농암 김창협, 화서 이항로. 면암 최익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금수정주변이 널려있는 암각문에 대해서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후 이 종택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결과, 이 건물을 처음지은 것은 정확할 기록이 없지만 임진란 이후 조선 후기에 별서(別墅)로 지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후 조선 말기 이후는 이곳에서 종손가가 계속 살아 오셨으리라. 이런 짐작을 하는 것이 건물의 구조상 안채가 빈약하고 별채와 사랑채의 규모가 대단한 것으로 보아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別墅치고는 그 규모가 너무나 커서 당시로서는 제2의 종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교수님 주춧돌 같은 것이 나옵니다.”
이때 발굴중이던 인부들이 박교수를 부르는 것이었다.
아! 아직 부족해 보였던 안채의 다른 부분이 발견되나 보다 하고 흥분이 되었다.
박교수를 따라 나도 현장에로 가보니 가지런히 쌓은 돌무더기가 나오는 것이었다.
박교수는 조심스럽게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주변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호미로 파고 빗자루로 그곳을 쓸어내기를 여러번하니 어느정도 돌더미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로 2미터 세로 1미터쯤 되는 규모로 돌을 가지런히 쌓이 놓고 그 위를 넓은 돌로 덮은 그런 상태 였다. 구조물 앞뒤에는 처맛돌같이 돌을 세워 놓은 것도 특이 해 보였다.
심상치않은 박교수의 눈빛을 보고 나는 순간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돌더미가 종택의 주춧돌이 아니라면? 머릿속에서 혼란스러운 계산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선사시대의 장묘형태입니다. 아마도 약 3,000년전 청동기 시대의 무덤으로 추정하기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그런 모습입니다. 이 곳이 지형적으로 선사시대에 사람이 살았을 충분한 조건을 갖추어서 기대반, 우려반이었는데, 이런 것이 나왔군요.”
여기서 선사시대의 유물이 나왔으면 좋겠네요.라고 어는 종친이 말하니 박교수는 빙그러 웃으면서,
“그런 유물이 나오면 안동김씨 집안에는 별로 반가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 선사시대의 유물이 나온다면 이곳은 종택 주춧돌까지 다 들어내고 다시 일대를 발굴해야하는 상황이 올 것입니다. 이 일대는 발굴이 끝나기까지 오랜 기간동안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종택복원도 불가능하구요”
점심시간이 되었으니 모두들 작업을 중단하고 식사하고 계속하기로 하였고, 박교수는 연구원에게 주과포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듣는 순간. 아, 이제 종택 복원은 완전히 물건너 갔구나 하는 한탄이 절로 나와 가슴이 무거워 졌다.
계속
댓글목록
김영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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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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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종택 발굴 현장이 선사시대 유적지라니! 종택 복원은 어느세월에나.......
역사적 발굴 현장의 모습 다음 내용이 궁굼합니다
김정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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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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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다음 편이 너무 기대 됩니다~! 점점 흥미 진진...
김윤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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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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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아휴! 이거 원 긴장되서.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