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우리 선조님 24(끝)---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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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1-21 09:41 조회1,537회 댓글3건본문
■ 디지털한국학
김구(金九)
시대 항일기, 대한민국
생몰년 1876-1949(고종13-?)
본관 안동(安東)
자 연상(蓮上)
호 백범(白凡)/연하(蓮下)
활동분야 독립운동가, 정치가
다른 이름 김창암(金昌巖)/김창수(金昌洙)/김구(金龜)/원종(
1876(고종 13)∼1949. 독립운동가·정치가. 본관은 안동. 아명은 창암(昌巖), 본명은 창수(昌洙), 개명하여 구(龜, 九), 법명은 원종(圓宗), 환속 후에는 두래(斗來)로 고쳤다. 자는 연상(蓮上), 초호(初號)는 연하(蓮下), 호는 백범(白凡). 황해도 해주 백운방(白雲坊)텃골〔基洞〕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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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항일운동
19세에 팔봉접주(八峰接主)가 되어 동학군의 선봉장으로 해주성(海州城)을 공략하였는데, 이 사건으로 1895년 신천 안태훈(安泰勳)의 집에 은거하며, 당시 그의 아들 중근(重根)과도 함께 지냈다.
또한, 해서지방의 선비 고능선(高能善) 문하에서 훈도를 받았고, 솟구치는 항일의식을 참지 못하여 압록강을 건너 남만주 김이언(金利彦)의 의병부대에 몸담아 일본군 토벌에 나서기도 하였다.
4.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
그뒤 1911년 1월 데라우치(寺內正毅) 총독 암살모의 혐의로 안명근사건(安明根事件)의 관련자로 체포되어 17년형을 선고받았다.
1914년 7월 감형으로 형기 2년을 남기고 인천으로 이감되었다가 가출옥하였다. 자유의 몸이 되자 김홍량(金鴻亮)의 동산평(東山坪) 농장관리인으로 농촌부흥운동에 주력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에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경무국장이 되었고, 1923년 내무총장, 1924년 국무총리대리, 1926년 12월 국무령(國務領)에 취임하였다.
이듬해 헌법을 제정, 임시정부를 위원제로 고치면서 국무위원이 되었다.
1928년 이동녕·이시영(李始榮) 등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창당하였고, 1929년 재중국거류민단 단장도 겸임하였다.
1931년 한인애국단을 조직, 의혈청년들로 하여금 직접 왜적 수뇌의 도륙항전(屠戮抗戰)에 투신하도록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이에 중국군 김홍일(金弘壹) 및 상해병공창 송식마(宋式?)의 무기공급과 은밀한 거사준비에 따라, 1932년 1·8이봉창의거와 4·29윤봉길의거를 주도한 바 있는데, 윤봉길(尹奉吉)의 상해의거가 성공하여 크게 이름을 떨쳤다.
1933년 장개석(蔣介石)을 만나 한·중 양국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 중국 뤄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를 광복군 무관양성소로 사용하도록 합의를 본 것은 주목받을 성과였으며, 독립운동가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1934년 임시정부 국무령에 재임되었고, 1939년 임시정부 주석에 취임하였다.
5. 광복군 운동
이듬해 충칭(重慶)에서 한국광복군을 조직하고 총사령관에 지청천(池靑天), 참모장에 이범석(李範奭)을 임명하여 항일무장부대를 편성하고, 일본의 진주만 기습에 즈음하여 1941년 12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이름으로 대일선전포고를 하면서 임전태세에 돌입하였다.
1942년 7월 임시정부와 중국정부간에 광복군 지원에 대한 정식협정이 체결되어, 광복군은 중국 각처에서 연합군과 항일공동작전에 나설 수 있었다.
그뒤 개정된 헌법에 따라 1944년 4월 충칭 임시정부 주석에 재선되고, 부주석에 김규식(金奎植), 국무위원에 이시영·박찬역 등이 함께 취임하였다.
그리고 일본군에 강제징집된 학도병들을 광복군에 편입시키는 한편,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과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에 한국광복군 특별훈련반을 설치하면서 미육군전략처와 제휴하여 비밀특수공작훈련을 실시하는 등, 중국 본토와 한반도 수복의 군사훈련을 적극 추진하고 지휘하던 중 시안에서 8·15광복을 맞이하였다.
6. 해방 후의 정치 활동
1945년 11월 임시정부 국무위원 일동과 함께 제1진으로 환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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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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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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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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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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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잘 읽고 있습니다.
김은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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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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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오랜만에 드러왔습니다.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