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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연수와 하담 김시양선조님 영해 유배지 탐방>(3)-영덕게와 영덕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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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5-01-31 00:12 조회1,542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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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연수와 하담 김시양선조님 영해 유배지 탐방>(3)-영덕게와 영덕문화원


 2년전 제2회 안사연 여름캠프 코스였던 월포해수욕장, 보경사, 수안김씨 집성촌 앞을 지난다. 얼마 전의 생각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모두 그립고 사랑스러운 모습들이요 보람찬 행사였다. 길가에는 온통 영덕대게 판매점들이 호객하느라 난리다. 요즘이 대게의 계절이란다. 그런데 원조는 영덕이 아니라 강구란다. 일행은 강구포구의 한 음식점을 찾았다. 그런데 엄청 비싸다. 먹을 만한 크기가 1마리당 5-8만원이다. 입이 벌어진다. 모두들 눈을 질끈 감고 공동으로 5만원짜리를 주문했다. 그런데 알찬 게살맛과 별스런 요리솜씨에 역시 잘했다고 감탄들을 한다. 그리고 2년 전 안사연이 잠시 들렀던 삼사공원내의 한 숙소로 옮겨 잠을 잔다. 내일은 기다리고 고대하던 하담 김시양 선조님께서 2차 유배지로 계셨던 영해를 찾아가는 날이다.

 우선 영덕 문화원 사무국장이신 이완섭 선생님께 내일 문화원에 방문할 것과 실제 유배지 확인을 위한 관련 자료를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이미 2년 전 <하담문집> 발간 당시 전화로 서로 인사한 바 있기에 님께서는 쾌히 응낙해 주셨다. 일행들에게는 나와 동행하는 한 분과 내일 오전, 잠시 열외할 것을 주문해 놓았다. 내일 고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여행 3일째, 마지막 날이요 기대가 가득한 날이다. 7시 5분전, 일행 중 제일 먼저 일어나 커텐을 여니 해가 막 뜨려는지 바닷물 한 줄기가 붉은 빛으로 길게 드리워져 내쪽으로 뻗어 있다. 출렁이는 바닷물 위로는 한 층의 구름이 수평선위에 덮여 있고 그 위로 화로 속의 불씨 같은 빨간 불이 아주 작은 혀처럼 낼름 내민다. 순간순간마다 커져가는 불씨는 주위를 더욱 환하게 하면서 바닷물을 온통 붉게 물들인다. 불과 5분 사이에 해는 구름 위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다. 장관이다. 의유당 연안김씨의 <동명일기>를 떠올리며 눈앞의 장관과 글 속의 표현을 상기해 본다. 잊지 못할 큰 충격이요 감동이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9시 출근시간에 맞추어 불과 10분 거리에 있는 영덕문화원을 찾았다.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영덕의 역사>란 책자를 발간하기 위한 원고가 수북이 쌓여 있는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이완섭 국장은 금새 나를 짐작으로 알아보고는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는 <영덕문화 제10집>(영덕문화원 간. 1999.)란 책 속의 <영덕과 유배 온 인물>(동 책 161P-167P)란을 펴시며 광해군 시절에 유배오신 하담 선조님의 이름을 보여 주신다. 왜 이렇게 반가운지. 마치 잃어버렸던 선조님을 막 찾는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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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덕문화 제 10집과 영해 유배자 명단. 우측면 상단에 김시양이 보인다>

 

 또한 편집중인 <영덕의 역사>란 원고를 보여 주시며 <영덕의 인물>에 대한 글에서 ‘이곳에 유배 온 인사들에 의해 영덕의 많은 인사들이 학문을 배우게 되었는데 김시양은 이곳의 권경(權璟)을 제자로 삼아 가르치기도 한 대표적 인물이다’라는 구절을 찾으니 눈이 번쩍 뜨인다. 이어 영덕과 관련한 역사 자료들을 총 정리한 <영덕 역사 자료 총람> 속에서 권경에 대한 부분을 복사해 받았다. 그리고 이국장으로부터 옛날에 영해는 도호부란 큰 지역이었고 이곳 영덕은 현에 불과했었다 한다. 그런데 최근엔 오히려 영해가 영덕군의 면으로 속해졌다고 한다.

 이어 이국장님으로부터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 하담선조님이 유배 오셨다는 구체적인 지명을 고증 받고 이어 그 동네의 향토사학자요 원로이신 두 분을 소개 받았다. 남정휴 (72세. 원구1리 232. 054-732-1045. 011-509-8045)선생님과 같은 동네의 백순호님이다. 큰 수확이었다. 선조님께서 유배중 기거하셨던 집터를 곧 찾을 것만 같았다. 마음이 급했다. 곧 원구 1리로 갔다. 동네에 입구에 들어서니 여기 저기 문화재로 지정될만한 고가들이 즐비하다. 범상한 마을이 아니었다. 먼저 남정휴님의 댁을 찾았다. 그런데 사모님께서 님은 마을 노인들과 같이 백암으로 단체 목욕하러 가셨다고 한다. 낭패였다. 휴대폰 전화를 알려 주신다. 전화로라도 여쭐 양으로 통화를 하니 지금 마을회관에서 출발 대기중이란다. 빨리 오란다. 무언가 일이 되려나 보다. 신이 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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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구리 고가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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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내에 있는 경수당>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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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궁금해서 침이 꼴깍 넘어갑니다. 좋은 소식 고대합니다.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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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다음 소식이 궁굼합니다. 

김주회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주회
작성일

  흥미진진합니다. 대박이 터질 듯하네요.
다음 소식.....

김정중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정중
작성일

  영해 나리골.... 사촌의 혼반이고.. 영해부사 할배도 계셨고....

14)김성좌(聖佐) (1639~1708)
양좌의 동생이고 호는 송리(松里)이다. 1663년현종 계유(25歲)에 문과 급제하여 여러 고을을 역임하고 영해부사로 재임중 청백리로 이름이 있었으며 갈암 이현일의 문인이 되었다. 만년에는 빙계계곡에 세심정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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