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字는 응림(應霖). 호는 우암(寓庵), 안렴사공(휘 사렴)의 후손으로 안원군(安原君) 휘 공량(公亮)의 아들이다. 1531년(중종26) 진사(進士)가 되고, 1539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했으며, 1544년엔 사가독서 (賜假讀書)를 했고, 내외직을 역임한 후 전라도·황해도 관찰사, 개성 유수 · 대사헌을 거쳐 예조참판(禮曹參判)을 지냈다.
1563년(명종18) 종계변무사(宗系辨誣使)로서 명나라 북경(北京)에 가서 조선 왕조 개국 후 오랜 숙제였던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아버지가 이인임(李仁任)이 아니라 이자춘(李子春)임'을 명나라 황제에게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강력하게 주장하여 결국 임무를 완수하였다. 그러나 조선으로 돌아오는 도중 연경(燕京)의 관사(館舍)에서 아쉽게도 병으로 몰하였다. 명나라 황제가 관의, 수의를 특사하였고 서장관 李陽元으로 하여금 염습과 호상을 치르게 하였다.
1565년(명종20, 을축, 가정44) 1월, 경기도 여주군 흥천면 귀백리 백양산 선영에 장사 지냈다. 문장이 뛰어나고 초서(草書)를 잘 썼으며 퇴계(退溪) 이황(李滉) ·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 금호(錦湖) 임형수(林亨秀) 등과 우의가 두터웠다. 선조(宣祖) 23년(1590)에 광국공신(光國功臣) 화산군(花山君)에 추봉(追封)되었으며 시호는 문단(文端)이다. 특히 8문장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저서로 《우암유집(寓菴遺集)》이 있다. 제례로서 기제사는 음력 9월 16일 밤에 모시며, 차례는 설명절과 한식에 올린다.
* 주. 팔문장(八文章) : 명종 15년 7월에 선발된 당대 제일의 문장가들을 일컫는 말로 오상(吳祥)의 문집인 <부훤당집>(負暄堂集)에 의하면 "문장양망(文章養望)으로서 정유길(鄭惟吉), 민기(閔箕), 심수경(沈守慶), 이량(李樑), 이이(李珥), 임수(林洙), 김주(金澍) 등이 선발되어, 팔문장(八文章)이라 불렸다.”라고 기록되어 있음.
▲ 화산군 묘소
▲ 화산군 묘소의 석물(동자석, 문인석)
<신도비와 해설문>
<2007. 6. 10. 안사연 참배시 재촬영>
<묘소>
▲ 문단공 휘 주 묘소
▲ 신도비
▲ 구 신도비 (일제강점기 때 건립)
<구신도비 탁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