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p11.png 김영수(金永綬)1716(숙종42)~1786(정조0)--(군)

(목록 제목을 선택하시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1. 통제사공 및 연보 소개

  2. 묘소 소개

  3. 교지 소개

  4. 유물 소개

  5. 제주도와 통제사공

  6. 안사연의 제주 통제사공 유적 탐방대회

  7. 여수호좌수영수성창설사적비

  8. 흥해 구제기적비

  9. 제주성지

 10. 각종 시문

 11. 포항의 유적-MBC방영 자료

 12. 권무정 소개

 13. 제승당 친필 현판

 14. 흥해군수 자료집 소개

 15. 교서

 16. 각종 문헌 자료

 17. 묘소참배기

 18. 경상도유적답사기

 19. 각종 문헌 자료 종합

 20. 시제참예보고

  21. 통제사공파 종중 구성

 

본문

p11.png 19. 각종 문헌 자료 종합

1) 나라에 충성한 용장(勇將) 김영수(金永綬)장군 (2007. 3. 27. 태영(군) 제공)

  출전: 여수시 발행 ‘내고장여수’에서 옮김.

충신 좌수영 절도사 김영수(金永綬)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의협심이 강해 약한 사람을 돕고 의리를 중히 여기며 자랐다. 집에서는 부모 모시기를 정성을 다하여 섬겼으며 동네 어르신을 뵈올때 마다 자기 부모 뵙듯 예의에 어긋남이 없었고 사귀는 벗마다 그의 말씨와 행동에 눌러 그의 뜻을 어긴 사람이 없었다. 불쌍한 이웃이나 가난한 친구들에게는 곡식을 나누어 주고 어려운 살림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인내와 정성을 깨우쳐 주었으며 항상 웃사람을 공경하고 받들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뒷동산에 올라 무예를 익히고 밤이면 책을 읽었으며 심신(心身)을 단련하고 학문을 익혀 과거시험(武科)에 급제하여 벼슬에 올랐다.

 

영조49년(1773)에 김해 부사로 계시다가 좌수영 절도사로 오셨는데 그 때 부패한 탐관오리를 정리하고 억울한 사람을 풀어주는등 선정을 베풀어 백성마다 칭찬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심지어는 다른 고을에서도 이사온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왜적이 출몰하여 백성을 괴롭힌다는 전갈을 받고 바다에서 배로 외적을 무찌르니 육지에서는 백성들이 합세를 하여 왜적의 머리를 수없이 베고 붙잡았으며 사람 마다 충신 김영수 휘하로 들어왔다. 또한 공은 평상시의 애국 충절을 안 스님들이 3백 여석의 식량을 가져오고 죽기를 결심하여 나라를 지킬 것을 다짐했다. 그뒤 다시 왜적을 쳐부수니 왜적은 도망가기에 바빴다.

 

군명으로 돌아와 또 한번 합세하여 식량을 되찾아 주인에게 돌려주고 빼앗은 전리품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한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으로 병사들이 훈련에 힘쓰고 비가 올때는 책을 가까이 하도록 하여 나라없는 백성이 되어는 안되겠다는 신념(信念)을 갖도록 깨우치기에 힘썼으며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 글을 가르쳐주어 누구든 배워야 큰일을 할수 있는 것을 스스로 알도록 힘쓰다가 돌아가시니 의승(義僧)들이 모여 충신 김영수의 애국충절을 길이 후손에게 전하기위해 비각을 세우고 제사를 모시니 후손들이 해마다 모여 공의 정신을 본 받고 나라사랑의 교육을 후손에게 시키고 있어 충신 김영수의 우국충정은 오늘도 숨쉬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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