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학공파(익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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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김봉지

41. 김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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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김변광

44. 김항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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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김구호

49. 김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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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김철응처

60. 김상익

61. 김용응

62. 김상형

63. 김상철

64. 김구응

65. 김 추

본문

 

p02.png 32)김구만(金龜萬)

 

               1632년(인조 10)--1699년(숙종 25).

 

자(字)는 원서(元瑞), 충북 괴산군 사리면 하도(荷島) 출생.

1666(현종7년 35세)에 진사(進士) 급제, 1677년(숙종3, 46세) 강서현령(江西縣令), 1678년(숙종4, 47세) 문과 급제 후 지평(持平), 정언(正言), 장령(掌令)을 거쳐 1689년(숙종15, 58세)에 경기우방어사 장단부사(京畿右防御使 長湍府使), 1693년(숙종19, 62세) 부호군(副護軍)을 거쳐 1694년(숙종20, 63세) 좌승지(左承旨)에 올랐고 1699년(숙종25) 68세로 몰(歿)하였다.

 

묘는 충북 괴산군 사리면 보광산 정(頂) 선영하(先塋下) 건좌(乾坐)이다.

 

유물 : 紅牌(문과 급제) 1매. 諭旨(장단부사) 1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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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충북 괴산군 사리면 사담리 보광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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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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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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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 우측의 문관석과 촛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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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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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석>

 

  <친필 소개>

   1)친필 서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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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필 서찰>(<槿墨>. 성균관대학교. 1981. 636P. 2002. 7. 19. 항용(제) 발견 제공)

 

 가. 발견일 : 2002. 7. 19        

나. 발견자 : 金恒鏞   

다. 소장처 : <槿墨>(성균관대박물관. 1981. 636P. 성균관대 박물관 소장)      

라. 원문 해독 및 번역인 : 金益洙(제)           

마. 윤문 편집 : 항용(제)

바. 한문 해독 원문

 

頃承下札 未遇順便 不卽修謝  今罪恨 卽仍 季方兄憑審至寒 靜況萬安 欣慰欣慰.  弟 四朔馬上不死幸矣.  他不足000000多 十餘邑行色太忙 又不得奉敍勢奈也何.  玆留一書以謝前失 又候起居

        餘伏惟兄照耳 謹謝狀上                  戊至二十四日   服弟 龜萬 拜

 

사. 번역문

 

지난번 내려보내 주신 편지는 받았습니다만, 그곳으로 가는 인편을 만나지 못해 즉시 감사의 말씀을 올리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니 죄스럽고 한스럽습니다.

즉시 이어 계방(季方)형이 찾아줄 것을 믿고 있다가 겨울에 이르렀습니다. 고요하고 하물며 모든 것이 편안하다 하니 크게 기쁘고 위안이 됩니다.

제(弟)는 넉 달 동안을 말 위에서 죽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달리 000000을 말할 것이 못되며  000이 많았으며, 10여 읍(邑)의 행색은 너무나 바빠 또한 형편을 서술할 수가 없으니 어찌하면 좋습니까. 이에 한 통의 편지를 남겨 전의 잘못을 사과 드리며 아울러 안부를 올립니다.

나머지는 삼가 형께서 살펴주소서. 삼가 사과말씀 드리는 글월을 올립니다.

 

 무(신)년(1668년) 동지 24일  복(服)을 입은 동생 구만(龜萬) 배

주1-戊0年(무0년)은 戊申年(1668년. 현종 9)으로 봄. 복을 입고 있다 하였는데 부친(감사공 휘 素)께서는 1666년(丙午年)에 몰하였므로 戊는 2년 뒤인 무신년(戊申年-1668년)으로 추정됨. 당시 공은 37세로 진사에 급제(1666년)하고 나서 강서현령에 제수되기 전 상태임.

주2-季方兄(계방형)은 남의 사내 동생을 존대하여 부르는 호칭인데 여기서는 수신자의 동생을 일컫고 있는 것 같으나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음.

주3- 000 은 원문이 훼손된 부분임

주4-수신자는 공의 형쯤 되는 사람으로 보이나 정확한 수신자는 알 수 없음.

 

   2)친필 서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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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발견일 및 입수과정 : 2002. 12. 23. 아트서울 경매 출품 내용 발견(발용(군) 정보 제공)-- 2002. 12. 24. 항용 매입(420,000원)

 나. 경매 공고 내용

번   호

kkm-101

성   명

원서구만(元瑞 金龜萬 1632- 1699)

품   명

간찰(簡札)

년   도

 1673 (癸元→癸丑? )

크   기

36.5x32cm

가   격

420,000원 <판매예약

 

 다. 원문 해독 및 번역인 : 김익수(제. 제주문화재 위원) .    라. 윤문 및 편집 : 항용(제)

 

(1) 원문

下察 謹謝賀狀  癸元禮上    龜萬 頓      新元祝賀    固當先奏於法奉之下    而聞遲里험兒之故   有意未果    此承先白至威且愧    生之今番所遭    非但其言相辱也    亦非焉    其人之可畏也    深報不足數之人    而問其職卽惡使也    所謂惡使者物言於隣邑門    吾不對面云    而畢竟迂路作行宿於絡原則其行果顧言矣    上官旣不欲對面則相下官何者敢我無所失而自安也    亦何敢謂無可畏而不動也    若使此身帶意職    而使彼兒輩千百作群而효효(시끄러울 효)    固不當動一毫矣    令則旣是外官且是下官  其之外更無他策    而聞金吾郞四散云此時守土之官不可容易離職    次是可復也    餘萬 00000    孫 晉士 下史     

 

(2)역문

살펴주소서. 축하의 글에 감사드립니다. 계년(癸年) 새해 아침에 예를 올립니다.    구만(龜萬)   돈수

새해 초하루를 축하함은 예법으로 아래에서 받들어 먼저 아뢰어야 마땅했습니다만, 마을의 불량배 때문에 늦어졌고, 뜻은 있어도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받고 보니 먼저 지극히 두렵고 또한 부끄러움을 아뢰나이다.

 

소생이 이번에 봉변을 당한 것은 다만 그 말에 욕을 당한 것만이 아니라, 또한 잘못에 그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깊이 보복하려고 하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은, 그 직책을 물어보면 악사(惡使)들입니다. 소위 악사(惡使)라는 자들은 이웃 마을의 문간에서 물의를 일으켜 놓고도 내가 대면을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끝내는 굽은 길에서 하던 짓들은 원칙에 묶여 그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행위는 결국 언행을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상관(上官)이 이미 대면하고 싶지 않다면, 서로 하관(下官)된 자가 어찌 감히 내가 잘못함이 없는 바에야 스스로 편안하겠으며, 또한 어찌 감히 두려워함이 없이 꿈적도 못하겠습니까. 만약 이 몸으로 하여금 관직에 뜻을 두게 하고, 저들 무리로 하여금 수백의 무리가 떼를 지어 시끄럽게 하더라도, 정말로 털끝만큼도 요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임금의) 명령이 있으면, 나중에 외관(外官)이라도 좋고 또는 하관(下官)이라도 좋은데, 밖에 이른다 해도 다시 다른 대책은 없습니다.

그런데 듣건대, 금오랑(金吾郞. 주: 금부도사)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고 하는데, 이런 때에 국토를 지키는 관원이 쉽게 직책을 떠날 수는 없으니 차차 옳게 회복되겠지요. 나머지 모든...(이하 원문 파손 5자)                손(孫) 진사(晉士)   하사(下史)

 

*주--계원(癸元) : '계(癸)'가 들어 가는 해의 정월을 의미함. 따라서 작성 연대는 연대는 게축(1673. 진사급제 후. 42세), 1683(계해. 正言, 掌令시절. 52세),  1693(계유. 부호군 시절. 63세) 등으로 추정됨

 

  <시문 소개>

 君臣酬酌連句(군신이 서로 주고 받으며 지은 연시) (2003. 8. 21. 항용(제) 제공)

肅宗   : 一堂今日風雲合 -  한 조당안에 오늘 풍운이 합하니

權大運: 和氣融融泰運長 -  화기가 온화하고 태평운수가 장구합니다

金龜萬: 舜殿庚歌臣幸忝 -  舜나라 궁전의 경가에 신이 다행히 참가했으니

李柱天: 商家麴蘖慶宣觴 -  商王家의 누룩으로 술상 베품을 축하하옵니다

            都兪盛事超三五 - 都兪의 성대한 일은 삼황 오제를 초월했고

            規砭嘉猷邁漢唐 - 잘못을 바로잡는 좋은 계책은 漢·唐보다 훨씬 나았었네

兪世重: 咫尺威顔承聖渥 - 임금을 가까이 모시면서 후한 은혜를 받았고

李德運: 醉衫共惹御爐香 - 취한 사람 적삼은 화로 향기 끌어 일으키네

肅宗   : 多難正憶老成臣 - 어려운 일이 많으면 노성한 신하를 생각하고

權大運: 只祝吾君聖德新 - 다만 우리 군주의 성덕이 새로움을 축원합니다

金龜萬: 魚水一堂千載會 - 물고기와 물이 한 조당에서 천년만에 모였으니

李柱天: 鴻恩稠疊此時臻 - 넓고 큰 은혜는 겹쳐서 이때에 이르렀네

李德運: 梅腮動處傳金斝 - 매화꽃 망울이 움직인 곳에 금술잔을 권하고

李柱天: 柳眼開邊占上春 - 버들 눈 피는 옆에 초봄을 알겠네

兪世重: 醉飽筵前歌且詠 - 실컷 취한 자리에서 노래하고 시를 읊으니

李德運: 恭將短律祝堯仁 - 삼가 짤막한 율시를 지어 堯帝의 仁壽를 축원합니다

 

출전 : 조선왕조실록(1694년(숙종20)년 1월. 영의정 權大運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매 숙종이 주연을 베풀고 詩作을 함)

 

  <致祭文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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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작일시 : 1699(숙종25)

2. 수령자 : 김구만

3. 출전 : <상락가승> (1895년(고종 32). 金龜浩 著. 김항용 소장본)

4. 정리 및 번역자 : 1차-2004. 11(김항용). 2차-2005. 1(김익수 감수)

5. 원문

  致祭文

  (원문 생략)

6.역문

 국왕은 신하 예조좌랑 朴師東을 보내 죽은 전 부사 김구만의 영혼에 고하여 제사하노라.

 

 영령은 명신의 자손이요 대대로 벼슬을 지낸 옛 문벌이라. 天品은 고지식함에 가깝고 입은 아부하지 않았다. 소질이 많으며 文名이 뛰어났다. 행함에 있어서는 재주를 겸하여 여유가 있었고, 이름은 진사시에 올라 칭송이 士流에 드높았다.  처음에는 관직에서 재능을 펴지 못했으나 애써 수고를 다하여 나중에는 공적이 있었다. 늦게서야 문과에 올라 승진하는 길이 마침내 열렸다. 대석(臺席: 승지)에 세 번 오를 정도로 그 풍채가 가히 볼 만 하였다. 여러 차례 지방관이 되었는데 지역 풍속이 안정되었다.  낮은 벼슬도 사양치 않았는데 역승(驛丞)이든지 절도사의 영(營)에 있든지 재주가 통하여 막힘이 없었다. 큰 고을을 맡아 서울을 튼튼히 하였고, 여러 조(曹)에 역임하였는데 주로 요직에 있어 궁궐에 출입하면서 상소문의 옳은 것은 올리고 나쁜 것은 막는 적당한 활동을 하였다.

 

내가 연경에 가 있을 때 그대는 내 곁에서 실로 나를 보살피고, 화답하며 서로 즐겼던 것이 어수일당(漁水一堂:임금과 신하의 친절한 사이)이었다. 경연석에서는 성심으로 진언하여 사치로 문란해진 것을 개혁하고, 나라를 위하여 먼 장래까지 생각하여 나라를 튼튼히 보호하는데 힘썼다.  비복들에게는 더욱 더 어질게 대하여 돌보아줌이 매우 돈독하였고 전원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기회를 보아 농사도 짓곤 하였다. 명예가 훼손됨이 없었고 관직에 나아가거나 물러감에 있어서는 항상 신실하였고 험한 길에 조심하듯 하고 장마가 걷힌 듯하였다.

 

남녘땅의 현령으로 명을 받았다가 동강(東崗: 강원도, 경북의 동쪽지방)에 수령으로 천거되어서는 편안하고 한가하게 자적하다가 만년에 은혜를 입어 관동의 절도사(또는 절제사)로 겨우 돌아왔는데 2년만에 갑자기 별세하니 인재로 쓰임이 다하지 못하고 영원히 구천으로 떠나고 말았다. 충성스럽고 순박한 성품과 뛰어나게 특출한 모습은 이제 끝이로다. 만나 볼 수 없게 되었으니 내 마음 아리고 슬프도다.   이미 이품(二품)의 반열에 올랐으나 부임하지도 못했도다. 나라에서 논의하여 슬픈 일을 담당하는 일에 있어 특별한 은전으로써 함께 도와 약소하나마 예관을 보내 제를 올리고 문상하니 흠향할 지어다.

 

通訓大夫 司僕寺正 知製 洪重夏 지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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